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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 길 작곡가/락당 단장
울산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예능인
 
UWNEWS 기사입력  2020/08/12 [15:23]

 

‘락당’창단으로 통일음악제 25회 공연, 시노래패‘푸른 고래’음악감독

재즈음악, 시노래 작곡으로 울산음악 수준을 높인 음악활동가 

 

 

 

 

[울산여성신문 원덕순 편집국장] 최길! 대중음악가이면서 대중적이지 않은 작곡가, 대중가요의 격을 높인 작곡가 그를 일러 이렇게들 평한다. 울산의 음악계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놓고도 크게 히트한 곡이 없어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지 못한 작곡가.

 

그럼에도 최길 선생은 울산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예능인이다.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공연단체 ‘락당’을 창단해 지역가수들을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 세울 수 있었던 음악활동가이다. 

 

울산가수 지망생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창작곡으로 각종 창작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가수가 되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청운의 꿈을 안고 경희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음악의 길로 들어선 지... 40여년! 그 중 절반은 울산에서 음악활동을 하며 크고 작은 공을 세웠다. 

 

 

 

 

그는 말한다. 울산 mbc 고인이 된 홍부장의 권유로 당시 황무지와 같던 울산음악과 대중문화의 격을 높이는 문화활동을 해보자고 시작한 라디오방송을 22년을 지속해 오고 있다. 

 

방송을 시작하고 2개월 뒤 홍부장의 타계로 멘붕상태에 있던 그는 그래도 울산에 남아 울산, 부산, 마산, 진주 4개 mbc 방송사를 오가며 가요심사와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오랜 세월을 울산에 정착해 활동한 것에 회한은 없느냐는 질문에,

“잠깐 다니러온 울산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게 된 것도 인연의 끈이 닿아있었다고 생각한다. 

산과 강과 바다가 좋은 자연에 반해 울산에 눌러앉았고, 바쁘게 최선을 다 해 활동하며 살았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는 음악하는 예술인답지 않게 긍정적이다. 물 흐르듯이 사는 예술인이라고 지인들은 평한다. 그의 말대로 음악렛슨, 주부가요교실... 등 울산의 음악인 양성과 문화를 위해 바쁘게도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시립악단, 김강섭 악단 등에서 활동하며 트럼펫을 연주했다. 그 후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기획사에서 작곡을 하며 가수들을 길러내는 일을 했다. 당시 가수 주병선, 편승엽 등을 지도해 가수로 우뚝 세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활동의 성과를 이렇게 자평한다. 

“힘껏 했으니 아쉬움은 없고 울산의 음악문화를 바꾸었다는 자부심은 크다.아직도 진행형이지만...허허”

 

그렇다! 지역의 음악인들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 락당을 창단해 25회까지 매년 정기공연을 해왔다. 그것도 창작곡이라야 대중가수들이 예술회관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규정에 맞춰 최길 선생은 자신의 창작곡으로 가수들을 예술회관 대공연장에 세웠던 것이다. 

 

또한 정일근 시인이 이끄는 시노래패 ‘푸른고래’의 음악감독을 맡아 울산음악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노래 가수로 유명한 남미경 가수도 그의 지도를 거쳤다. 특히 울산에도 창작곡으로 음반이 나오는 데는 최길 선생의 역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고등학생들이 대학 실용음악과로 진학하도록 지도를 하고, 창작곡으로 출전할 수 있는 ‘현인가요제’에 최길 작곡가의 곡으로 출전해 3번이나 대상을 수상하도록 한 뛰어난 창작곡을 작곡하는 작곡가이다. 

 

다만 그 뛰어난 곡도 대중적이지 못하거나 가수들의 활동반경이 중앙무대가 아니라는 점은, 지역가수들이나 작곡가들이 세칭 힛트하지 못하는 한계라고 할 것이다.

 

 

“지역과 중앙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하며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지역예술인들의 각고의 노력과 지방정부의 부단한 노력과 고민이 있어야만 지역문화가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의 나이 이미 60을 넘어서고 원로 작곡가로 자리하고 있음을 볼 때 아쉬움이 왜 없을까마는 “어릴 때부터 키워온 제자이자 딸인 선덕이가 일본에서도 청순함과 가창력으로 호평을 받고도, 많이 지쳤는지 쉬고 있음이 아쉽고 울산정착 초창기에 지역색으로 마음고생을 좀 한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밝혔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시귀처럼 부지런히 달려온 음악인생, 가족들과 제자들이 아빠를 존경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잘 살아온 삶이라고 자평한다. 

 

앞으로 꿈이라면 음악의 꿈을 가진 지역 꿈나무들을 기초부터 차근히 가르쳐 길러내는 음악학교를 만들고 싶고 조금은 쉽게 부를 수 있는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하는 최길 작곡가. 최길 선생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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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12 [15:23]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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