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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이 사는 법]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울산학춤 계승자
학춤 추는 스님, 울산의 문화역사, 생태환경에 막힘없는 학자 울산학춤의 원류 찾아 24년 세월, 박사3, 석사3, 학사3 취득 ‘춤박사, 새 박사, 민속학박사’
 
UWNEWS 기사입력  2020/07/08 [18:01]

“울산학춤 뿌리를 찾아 체계를 세웠으니...

학춤은 15명 석,박사 제자들이 지켜갈 것이고, 

관장 소임이 끝나면 통도사로 돌아가 수행을 하며 살 것입니다” 

 

 

[울산여성신문 원덕순 기자] 그를 일러 괴짜 스님이라고들 한다. 

통도사 방장스님은 철새홍보관 관장이 되었을 때 “통도사 생기고 스님이 공무원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파안대소하며 좋아하셨다는 일화를 들었다. 

울산태생이 아니면서 울산을 위해 30년 가까운 세월을 송두리째 쏟아부은 울산학춤 춤꾼이자 민속학자 생태학자... 그리고 통도사 성보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스님

 

4대째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양산학춤을 추다 우연한 기회에 국립국악원에서 발간한 책에서 “민간학춤은 울산의 괘변천신설화를 바탕으로..” 라는 글을 읽고 울산학춤에 몰입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울산학춤 뿌리를 찾기 위한 외롭고 힘든 시간들, 경북대학, 안동대학...관련분야의 공부를 위해 두 세 개 대학을 다니는 것은 물론 울산학춤 공연을 1천 회 이상 해왔다. 

 

울산의 텃새, 물새뿐 아니라 철새를 10여 년간 관찰하고 연구했다. 

10년 넘는 데이터를 정리해 울산을 찾아오는 철새의 이동경로, 생태환경, 그에 따른 울산의 기후 지형, 생태계 변화까지 기록이 된 데이터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매일 새벽 3,4시면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뒤집으며 태화강, 대숲으로 나가 새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매일의 데이터를 기록했지요. 10년 세월 3650일 중 3000일은 될거라 믿습니다 ”

그렇다! 누구도 할 수 없는 10년 세월 철새를 탐구한 기록이 울산태화강 생태계의 중요한 자료가 된 것이다. 

 

“관장님이 스님이기 때문에 이 힘든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내공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하하 기분좋게 웃는다. 

이런 각고의 노력들은 첫 째 울산의 정신적 가치가 될 울산학춤을 바로 세웠고 둘 째 그의 힘겨운 수고가, 십만 마리가 넘는 철새들이 울산을 찾아오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울산태화강이 국가정원 2호가 되는 데 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철새홍보관이 세워지고 철새와 조류연구가 가능하도록 한 10년 연구기록 데이터를 남길수 있게 된 것이리라!

 

태화강을 중심으로 습지가 많은 울산은 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의식주가 모두 해결되는 최적지이다. 

“태화강, 동천강, 여천천, 내황천 등 6개의 하전의 습지에다 백리대숲의 주거지가 있고 수산물, 삼산평야 등 풍부한 곡창지대인 울산, 9만 마리 백로가 날아오고 13여만 마리 떼까마귀가 10월15일을 전후해서 날아와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잘 지내다 4월말 경이면 날아가는 곳이 울산입니다”

그래서 울산은 고래로부터 학의 고장으로 울산에 학이 들어가는 지명들이 많은 연유이기도 하다. 학성, 학산, 비학, 회학, 학남, 무학산, 삼학춘,,,

 

 

 

학춤과 새, 민속학, 지리, 환경, 문화...전 분야를 공부해온 터라 그의 학문과 삶의 철학에는 막힘이 없다. 

그의 이런 각고의 노력이 울산학춤을 완성시켰고 제자 15명을 길러내 박사3명에 석사 9명을 키워냈으며, 울산의 춤문화, 정신적인 가치를 바로 세워놓아서 울산시민들의 자부심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제가 살아온 길에 후회는 없습니다. 하고 싶고 하고자 했던 일을 해왔고, 이런 일들이 30년 가까이 살아온 제2의 고향인 울산에 도움이 되고 한 역사가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제 소임을 다 마치면 통도사로 돌아가 수행을 하며 제게 주어진 길을 갈 것입니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 스님, 울산학춤 계승자! 울산의 충절 기생 전화앵을 울산여성인물 1호로 꼽는 그는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전화앵의 정신을 기리고 이어갈 것을 고집하며 19년 째 추념제를 올리고 있다. 

 

울산이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는 29년 전 1981년 통도사에서 출가했고 24년간 울산학춤의 원류를 밝혀내고 재현하기위해 혼신의 힘을 쏟은 보기드문 춤꾼이기도 하다. 그가 학춤을 출 때는, 춤사위 한 동작 동작이 마치 한 마리의 학이 여유자적하게 노니는 듯 관객을 매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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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08 [18:01]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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