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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이란 어떤 모습일까?
 
UWNEWS 기사입력  2020/01/23 [16:14]
▲ 이창형 자유민주시민연대 상임대표/전 울산대 교수     ©UWNEWS

‘참교육’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교육’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참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한번 되새겨 봅니다.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어느 초등학생 소녀가 학교에 가자마자, 길에서 주워온 야생화를 내밀며 이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담임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꽃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 내일 알아보고 알려줄게”" 선생님의 말씀에 소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주운 꽃인데 이 꽃의 이름이 뭐예요? 우리 학교 담임선생님도 모른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런데 소녀는 오늘 두 번이나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믿었던 아빠도 그 꽃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녀의 아빠는 식물학을 전공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소녀를 담임선생님이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질문한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소녀는 아빠도 모르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알려준 선생님이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젯밤 소녀의 아빠가 선생님에게 전화하여 그 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빠는 ‘그 꽃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딸이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가정의 부모와 학교 선생님이 함께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참교육’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유배시절, 강진에서 학당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어느 날 강진에 사는 황상(黃裳)이라는 아이가 다산 선생을 찾아와 배움을 청했습니다. 하루는 다산 선생이 황상에게 공부할 것을 권하니, 황상이 부끄러운 듯 선생에게 고백했습니다. 

 

“선생님, 제게는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산 선생이 말했습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큰 병통이 있다. 첫째는 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는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것이 병통이고,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노력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 진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빛나게 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해야 한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참교육’이란 선생이 일방적으로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배우는 학생의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육은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가정교육 없이 학교교육이 잘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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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3 [16:14]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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