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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신년 벽두에 찾은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문학관
여름밤 치렁치렁한 달빛 아래 허생원의 마음은 들뜨고
기사입력: 2020/01/23 [11:2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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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근 기자

 

  [울산여성신문 문모근 기자] 겨울 한파가 최대한의 힘으로 기승을 부리는 신년 새해 벽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아침은 몹시 매서웠다.

 

  겨울철 아침 평균 기온이 영하 25도를 넘나든다는 김밥집 아줌마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새벽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는 아줌마는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이 따뜻한 국물이라도 한 그릇 잡숫고 나가는 게 좋지 않냐”며 “그분들이 국밥을 먹으려고 그렇게 또 일찍 나오시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 고맙고”라고 말한다.

 

  아줌마의 고마워하는 마음보다 따뜻한 한 끼. 아침밥을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새벽부터 문을 열고 영업을 한다는 자체가 새벽일을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천사가 아닐 수 없다.

 

 

  소설가 이효석의 고향이자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자 배경인 봉평. 작가의 고향 부근인 봉평·대화 등 강원도 산간마을 장터를 배경으로, 장돌뱅이인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 사이에 맺어진 하룻밤의 애틋한 인연이 중심이 되는 매우 서정적인 작품 속 줄거리를 생각한다.

 

  허생원은 하룻밤 정을 나누고 헤어진 처녀를 잊지 못해 봉평장을 거르지 않고 찾는다. 장판이 끝나고 술집에 들렀다가 젊은 장돌뱅이인 동이가 충주집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는 심하게 나무라고 따귀까지 때려 내쫓아버린다.

 

  그날 밤, 다음 장이 서는 대화까지 조선달·동이와 더불어 밤길을 걸으면서 허생원은 성서방네 처녀와 있었던 기막힌 인연을 다시 한 번 들려준다. 낮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던 끝에 동이의 집안 사정 이야기를 듣다가, 허생원은 사생아를 낳고 쫓겨났다는 동이의 어머니가 바로 자기가 찾는 여인임을 내심 확신한다. 허생원은 갑자기 예정을 바꾸어 대화장이 끝나면 동이의 어머니가 산다는 제천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혈육의 정을 느끼며 동이를 바라보던 허생원은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인 것도 확인한다.

 

▲ 이효석 문학관 입구     © UWNEWS

 

  메밀꽃 필 부렵의 대표적인 묘사 한 장면을 옮긴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달빛 아래 메밀꽃이 하얗게 핀 밤길을 배경으로, 얽은 얼굴 때문에 여자와는 인연이 없던 허생원의 애틋한 사랑을 형상화 시킨 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회상 형식으로 이어지는 장돌뱅이 허생원의 애수는 산길-달빛-메밀꽃-개울로 연결되면서 신비스러운 작품 배경의 분위기와 함께 낯익은 한국 정서로 자리하고 있다.

 

▲ 소설가 이효석의 집필모습     © UWNEWS

 

  이효석 문학의 백미(白眉)이자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단편소설 중의 하나이다. 이효석문학관은 평창군의 특화사업으로 지어졌다. 오래 전부터 수학여행길로 각광받고 있던 봉평 메밀밭을 이효석이라는 걸출한 소설가와 연계해 지역문화관광지로 엮어낸 것이다.

 

  덕분에 전국에서 메밀꽃이 필 때면 수많은 관광객과 문학지망생, 작가들이 찾아와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탐구하고 지역특산물인 메밀로 만든 국수를 맛보는 것이다. 메밀막국수는 육수국물에 말아 먹거나 독특한 양념을 넣은 비빔막국수가 있는데, 후식으로 메밀전병 한 점을 먹으면 사시사철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된다.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와 충주집이 주는 시골장과 장터의 분위기.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우리네 정서는 지울수 없는 그리움 그것이다. 모처럼 오랜만에 찾은 봉평에서 메밀막국수 한 그릇을 비우며 휘영청 밝은 보름달과 산허리에 걸친 산길의 빛나는 모습을 그리며 길을 나선다.      

 

▲ 이효석 문학비     © UW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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