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행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문화탐방] 대구의 근대문화골목길을 따라(2)
청라언덕을 따라...
 
원덕순 편집국장 기사입력  2019/11/08 [18:51]

청라언덕을 따라 가다보면 대구의 근대문화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구수하고 깊이있는 문화의 맛을 볼 수가 있다 

 



[울산여성신문 원덕순 편집국장] 대구에서 선교와 의료활동의 근거지가 된 선교사들의 주택과 그 곳을 중심으로 동산의료원이 근대에서 현대로, 개천물이 출렁이던 내를 건너면 웅장하고 아름다운 계산성당이 있고... 시인이 노래했던 그 개천은 복개되어 차와 사람으로 붐비고 있으니 우리는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풍광을 머릿속에나 만날 수밖에 없다. 시간은 그런 것이고 역사 또한 시간 속에서 엮어져 흘러갈 것이다.

 

청라언덕을 뒤로 하고 200미터 쯤 걸어가다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계산성당에 들러 잠시 성당의 약사와 1930년대 대구시민들이 모금으로 키워낸 천재화가 이인성의 계산성당 그림도 감상했다. 

 

울산에서 멀지 않은 경북 대구광역시가 우리나라의 3대 도시로 성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구에 대한 애향심과 시민의식, 나아가 투철한 애국정신이 바탕에 흐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시인 이상화, 고상돈 고택으로 가는 길은 대구의 이름난 인물들의 초상화와 사진, 그림들로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역사의식은 높이 살 만 했고 일본의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던 애국정신-정치, 종교, 예술인들, 문인과 화가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계산예가에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고택이 잘 보존돼 방문객들에게 생생히 다가왔다. 마당에는 詩碑가 있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역천'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중략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글로써 온 몸으로 일본에 항거하는 시를 써 혼을 불어넣은 민족시인의 시귀와 정신이 집안 곳곳에 배어있는 듯 유택은 고고했다. 그 애국정신과 민족정신이 면면히 흐르는 계산예가는 골목골목이 아름다웠다.

 

 

돌아서 나오는 길 모퉁이에는 대구 전태일기념관 조성 시민모금운동 현수막과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노란리본이 묶여져있고 "벌써 10년 여전히 당신이 그립습니다"라는 문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름이 '바보 주막'이었다. 주인장의 '봉하막걸리 이야기'도 있었다. 퇴임을 한 노무현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에 내려가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자고 동네주민들을 설득해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쌀을 팔았다. 소득이 많지 않아 고민하다 그 쌀로 막걸리를 빚어 팔자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사랑을 담다라는 '애담 막걸리' 인데 출하직전에 대통령의 서거로 중단되었다가 ‘봉하막걸리’로 이름을 바꾸고 ‘바보주막’에서 판매를 하고 있다고한다. 여기서 대구 바보주막을 만났다. 

 

대구 바보주막은 협동조합 다문에서 운영하며 수익금은 시민단체와 연대해 불우한 이웃들과 연탄, 김장나누기, 민주화운동에 쓰인다고 하니 곳곳에 살아있는 정신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근대문화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역사체험관, 작은 박물관을 만날 수 있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도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약령시로 유명한 대구답게 약령시 한의학박물관이 있고 거리는 대부분이 한방의원, 약제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이 있어 방문객들의 체험과 친환경한방체험을 하도록 신경을 써 준비돼 있어 아이들이 좋아라 체험에 참여하기도 했다. 

 

 

뽕나무를 보급한 명나라의 두사충의 공로와 사랑이야기가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명나라 시성이라 불리는 두보의 21대 손인 두사충이 임진왜란 때 이여송장군을 따라 풍수지리 참모로 들어왔다가 전쟁이 끝난 후 대구에 정착해 살면서 조선민의 의복과 약제를 해결하고자 뽕나무를 심었는데, 뽕잎을 따러 나무에 올라간 두사충과 옆집 여인과 사랑이 결실을 맺은 '뽕나무 이야기길'도 따사론 사랑이야기였다. 이순신 장군과도 친분이 두터웠던 두사충이 조선인들에 대한 애정인 뽕나무로 하여 보답을 받은 사랑이야기...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김광석 길’로 골목길이 만들어져, 김광석을 사랑하는 팬들, 음악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까지 들러 라이브 음악을 듣고 잠시 짐을 내리고 쉬어가는 곳이 되고 있었다. 생전에 그가 한 말,

 

"노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노래를 하면서 사람들과 저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랜 방황 끝에 제가 서있는 지점이 바로 그 곳이죠"

김광석 거리를 걷다보니 그가 부르던 '일어나'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도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이 없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울산광역시의사회'에 동행한 이번 여행은 짧고 단편적인 대구알기였지만 대구시민들의 정신과 역사의식, 애향 애국정신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트위터 페이스북 공감
기사입력: 2019/11/08 [18:51]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