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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대구의 근대문화골목길을 따라(1)
‘동무생각’ 부르며 찾아간 상상속의 ‘청라언덕’
기사입력: 2019/10/24 [19:55]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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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편집국장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동무야~” 

 

 

 

[울산여성신문 원덕순 편집국장] ‘햇빛은 꽃을 물들이고 역사는 예술을 물 들인다’고 했던가...? 수 년전 어느 중앙일간신문의 일요판에서 청라언덕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아름다웠고 그 유서 깊은 언덕의 이야기와 향기를 맡아보고 싶었다. 

 

 백석과 자야의 애틋한 사랑을 읊은 이생진시인의 '내가 백석이 되어’ 시를 읽고 찾아본 ‘길상사’에 대한 기대는 시의 감성 보다 더 애틋했다.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에 젊은 여인들이~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

 

시인이, 죽은 백석시인이 되어 길상사를 찾아가 연인 자야와 해후장면을 읊은 詩인데, 길상사는 성북동 고관대작들의 은밀한 고급술집으로 유명했으며 당시 그렇게 벌은 수 백억의 재산을 사회에 내놓으며 했던 자야의 말 한마디는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많은 돈인들, 백석의 시 한 구절 만 못하다”던 그 요정은 길상사로 바뀌어 법정스님이 머물던 곳이기도 했다. 길상사는 자야와 백석시인의 사랑만큼이나 고즈늑하고 아름다웠다. 

 

기행 서두부터 빗나갔지만 ‘청라언덕’ 이 바로 그러해서 시간이 되면 가볼 곳으로 숙제처럼 남아있었는데...마침 시월 하고도 13일. 울산광역시의사회가족들의 가을탐방이 있어 동행하게 되었다. 버스 3대에 분승해 아침9시에 출발한 버스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잠깐 요기를 한 듯 한데... 2시간 만에  대구시 중구 근대문화가 시작되는 청라언덕 앞에 도착해 있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중학교 음악책에서 배운,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동무생각’이다. 이 노래를 즐겨 불렀던 꿈 많은 여중생인 우리들은 청라언덕이 어떤 곳일까? 친구들과 손가락 걸고 우정을 다짐하던 언덕이었나?

 

청라언덕은 청라, 푸른 담쟁이로 덮인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주택과 그들이 세운 병원과 교회와 그리고 그들이 이국땅에서 잠든 무덤이 있는 정원이 있었다. 아직도 붉은 벽돌이 아름다운 선교사들의 주택 세 채는 의료박물관으로 고색창연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100년의 세월이 지나오며 당시의 우리의 생활상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이 곳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곳은 대구시의 근대문화를 보여줄 뿐 아니라 대구시민 정신이 살아있는 학교와 병원과 성당, 교회, 일본의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지, 3.1만세운동의 시발지인 3.1만세운동길, 의료박물관, 한의학의 시초가 된 두사충의 뽕나무 사랑이야기가 흐르는 뽕나무거리, 계산동의 예가에는 민족시인 이상화 시인과 고상돈의 고가가 있었다. 

 

한의학박물관이 있는 약령시 거리와 한양 과거보러 가던 길 영남대로가 약령시가 있는 도로를 통과해 지나가야 했다. 약 3시간에 걸쳐 대구시 근대문화의 중심을 주마간산 격으로 가슴에 담을 수가 있었다. 이곳에는 대구시의 역사가 있고 시민들의 항쟁의식을 엿볼 수 있고 100년 전 우리나라의 생활상을 선교사들의 활동과 역사 자료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자, 다시 청라언덕으로 가보자. 선교사들이 가져와 심은 북 아메리칸 産 푸른 담쟁이는 여름이면 푸른 빛이, 가을이면 붉은 단풍색으로 빛깔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청라언덕은 푸른 담쟁이로 덮인 언덕을 이름이니 지금은 나지막해진 언덕, 소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수목이 울창한 선교사들의 안식처 세 채가 의료박물관 등으로 방문객을 맞아주고 뜰에는 100여년 전에 가져와 심었던 사과나무가 작은 사과를 올망졸망 달고 있다, 대구 미인, 대구 사과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그 얽힌 일화들이 새롭다.

 

대구사과는 선교사들이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이 못 먹고 헐벗고 살았으니 사과나무를 심어 사과로 배를 불리고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한 사과를 먹은 대구사람들의 피부가 좋았음은 당연지사. 당시 최초 미스코리아대회에서 대구 여성이 일등을 차지해 사과를 많이 먹은 덕에 대구에는 미인이 많이 난다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 듯도 싶다. 

 

선교사 닥터 존슨은 동산의료원의 1대 원장으로 그 후 선교사들의 후손들이 모두 한국에서 의료활동을 했으며, 죽어서도 이 곳 대구 현재의 동산의료원 정원에 묻혀있다. 선교사들과 부인, 그 가족들, 후손들 특히 태어난 지 2개월 된 아기무덤 등 14개 묘가 모여 사후에도 오순도순 그 모습이 아름다워 ‘은혜의 정원’이라 불리고 있다. 

 

청라언덕의 옛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이야기와 시를 살펴본다. 푸른 담쟁이가 붉은 벽돌을 타고 기어오르던 아름다운 청라언덕에는 선교사들이 만든 신명학교와 계성학교, 후에 그 이름을 따서 계명대학교가 되었고 동산의료원이 설립되었다. 그 신명학교의 어여쁜 한 여학생을 사모하던 박태준 선생이 곡을 쓰고, 사랑이야기를 나누던 이은상시인이 시를 써 노래가 된 ‘동무생각’이 교과서에 실려 여학생들의 감성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그 버들은 지금도 있고’ 라는 시에는 옛 청라언덕에 대한 기억과 감회가 서려있어 일부분 읊어본다.

‘청라언덕 아래 버드나무가 있고 버드나무 위쪽 켠 언덕이 청라언덕이고

추억하는 자들에게 모질게 남아서 버드나무 아래 넘실넘실 냇물 흐른 기억이 있고...

그 기억 적시던 냇물은 이제 없고 계산성당에서 내 건너 오르던 청라언덕은 냇물 덮은 도로의 횡단보도 건너서야 겨우 있고...중략’

 

청라언덕은 당시의 여고생들의 수런거림과 그를 지켜보며 가슴 태우던 남학생들의 두근거림이 있고 버드나무가 있었고 언덕 아래엔 냇물이 흐르고 내를 건너 성당의 종소리가 들리는 곳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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