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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주간에 살펴보는 성평등 인식
차별과 불이익에서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로…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 스스로 없애야
 
문모근 기자 기사입력  2019/07/05 [11:02]
▲ 3일 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2019년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에서 김석진 행정부시장이 유공자 표창을 수여한 뒤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UWNEWS

 

[울산여성신문 문모근 기자] 성평등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으로 성별을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인권의 문제가 세계 인권 문제의 중심적 과제로 설정된 계기는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였다. 

 

대회는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라고 선언함과 동시에, 모든 여성과 소녀의 평등한 지위와 인권을 국제 연합(UN) 활동 전반에 주류로 통합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여성의 인권 문제가 세계 인권 문제의 중심적 과제가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온 여성 운동의 성과가 있었다. 이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라는 선언은 법적인 평등이라는 인식을 뛰어 넘는 것이다. 동등한 대우를 전제로 하되, 여성으로서의 ‘차이’까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발전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입장에서 그들만의 평등이었던 것이다. 즉 평등한 사람을 이야기할 때 그 속에 여성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처음 시작된 고대 그리스에서도 여성의 위치는 보잘 것 없었다. 심지어 아내는 집안일을 돌보는 존재로서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중성으로서 취급당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여성도 노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남녀평등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차 여성들도 남성과 똑같이 교육을 받고, 직업에 종사하며 임금을 받을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참정권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비로소 주어졌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도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불과 백 년도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1830년대 노예제도 폐지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해방 요구가 일어나게 됐다. 그 후 1920년 21세 이상의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1867년의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법안을 제출했으나 부결되자 이를 계기로 여성참정권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지식인과 중산층을 구성원으로 하여 계속적인 노력으로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인정되었고, 1928년에는 모든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참정권이 주어졌다. 

 

프랑스에서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정치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후 1946년에야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 혜원 신윤복의 ‘무녀신무(巫女神舞)’. 여자들의 수고를 담 너머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서 남존여비의 풍자를 읽을 수 있다.     ©UWNEWS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 -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고?

 

14~15세기 중세 유럽에서 여자는 미성년자로 취급받아 언제나 남자의 보호 아래 있었다. 즉,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보호를 받았고 결혼해서는 남편이 보호자가 되었으며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보호를 받았다. 또한 이슬람의 여인들은 하인들의 감시 아래 집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남편 이외의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지위에 맞게 대접을 받았다.

 

조선시대 이전 여성의 지위를 살펴보면, 신라에는 세 명의 여왕이 있었는데 이는 신라만이 가지고 있던 골품제라는 독특한 신분 제도 때문이다. 골품제에서는 한정된 신분만이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만 남게 되면 여자가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고구려의 온달장군은 평강공주에게서 교육을 받아 장군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사》에는 딸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딸의 상속권은 14세기 이후 조선의 법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또 조선 초기 신사임당은 자신의 친정집에서 아들 이율곡을 낳게 된 것을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남존여비 사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재산권 상속이 사라졌고, 남존여비의 사상이 강화되었다. 칠거지악, 삼종지도, 여필종부같이 여성을 낮추는 규범들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였다. 또 집안일에 대해서도 여성이 주장을 내세우면 재수가 없다면서 집 밖의 일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이러한 남존여비 사상은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생애를 지배해 왔고, 남아선호 사상도 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의 법적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고, 사회·경제적으로 남성과 평등한 위치를 가질 수 있게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전통문화 속에 여성들의 굴레로 작용한 칠거지악은 남편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7가지의 조건을 말하는 것으로, 여성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①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 ②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 ③ 음탕한 것 ④ 질투하는 것 ⑤ 나쁜 질병이 있는 것 ⑥ 수다스러운 것 ⑦ 도둑질하는 것 등이 있다.

 



양성평등을 이루려면?

 

평등은 상대적 평등과 절대적 평등이 있다. 절대적 평등이란 누구든지 무조건 똑같이 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른과 아이가 달리기를 한다면 누가 이기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이라는 말로 어른이 이겼으니까 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불평등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인정하여 차별적으로 대우해야 하는 상대적 평등이 필요한 것이다.

 

▲ 자료출처:사람인     © UWNEWS



여성을 위한 제도적 노력 필요

 

요즘은 직장에 들어갈 때 겉으로는 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알게 모르게 여성이 차별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같은 조건이면 남자를 뽑는 경우도 있고, 남자에게는 승진의 기회도 더 주어진다. 또한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할 때에도 여성이 직장을 그만 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여성의 권익을 지켜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동등한 일을 하고, 같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를 기르는 것과 집안일에 대한 여성의 부담이 크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여자니까 또는 남자니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이 바뀌어야 비로소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자는 쉽게 울면 안 된다,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물론 요즘은 옛날보다 많이 바뀌어서 남자도 간호사가 될 수 있고, 아내가 남편보다 월급을 더 받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편견을 없애는 것이 양성평등을 이룰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다. 스스로부터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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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5 [11:02]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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