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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소주(屠蘇酒)와 다산
 
UWNEWS 기사입력  2019/04/12 [09:33]
▲ 한석근 前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UWNEWS

 울산에는 남목(南牧)과 북목(北牧)이 있다. 울산의 방어진 남목은 이미 신라 때 부터 북구 양정동 심청골에서 동대산 줄기를 가로질러 주전동과 어물리(당사동) 바닷가로 석축과 목책을 쌓았다. 조선의 세종 때는 옛 마성을 견고하게 손질해 제2마성을 축조했고, 임란이후에는 더욱 견고하게 마성을 정비하면서 방어진 목장(남목)의 감목관이 장기목장(북목)까지 관할하게 했다.

 

 그 북목 장기읍(현재 포항시에 편입)은 매우 접근하기 어려운 동해에 접한 오지이다. 이곳에 조선초기의 정세가인 송시열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유배를 왔다. 이곳에 다산 정약용도 강진 보은산방에 자리 잡기 이전에 먼저 유배를 왔다. 다산은 장기에 머물면서 구룡포 바닷가를 나들이하며 해촌 사람들의 피폐한 생활상을 목격하면서 한탄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어부들이 고기잡이 나갔다 돌아오는 배안에 물고기가 거의 없었다. 사정을 살피니 ‘칡으로 짠 그물’ 때문이었다. 억세고 코가 넓어 약삭빠른 물고기가 잡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산은 어부들에게 부드러운 무명으로 그물을 짜게 했다. 그 이후부터 많은 물고기가 잡혔고, 어부들은 내남없이 고맙다는 인사로 생선을 선물로 들고 왔다. 이를 지켜본 하급관리가 심통이 나서 조정에 밀고를 했다.

 

 “전하 백성들도 무명옷을 입지 못하는 처지에 다산이 사사로이 어부들에게 무명으로 고기 잡는 그물을 짜게 하니 조정에 바칠 면화가 턱없이 부족하오니 다산을 벌하여 주십시오” 라고 했다. 머잖아서 다산은 장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전라도 강진으로 이배 되었다. 이곳에서 다시 새로운 지리적 특성과 인심에 적응하며 지내던 어느 날 산방에 찾아온 지인이 술 한 병을 들고 찾아왔다. 다산은 기뻐하며 이런 시를 썼다.

 

 “인생에서 제일 기쁜 때는 도소주(屠蘇酒) 마시는 그 때라네” 라고 그의 시첩에 남긴 한 구절이다. 도소주는 질경(桎梗)이란 약초를 주재료로 하며, 방풍(防風), 육계(肉桂) 등의 약재도 들어가 있다. 옛 어른들은 1년 내내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꼭 이 술을 담아 먹었다. 일종의 세시풍속주로 면역제 역할을 했다.

 

 질경은 도라지인데 도라지는 전염병의 통로인 폐 경락을 지키는 수문장 노릇을 한다. 도라지 줄기에서 나오는 유액이 점액 성분이 있어서 기관지나 폐로 들어오는 여러 가지 이물질과 미세먼지의 독소를 흡착하여 분해해 배출케 하는 작용을 한다. 용각산은 한방에서 고유의 처방법인 감길탕을 응용해 만든 약품이다. 감길탕은 감초와 질경으로 만들어지며, 기관지염과 편도염을 치료하는데 특효로 쓰이기도 한다. 길경의 성분 속에는 인삼 같은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어 면역기능 강화작용을 하며, 질경 고유의 대식세포의 항균성을 강화하여 염증 치료에 효력이 좋다. 한방의 고전 ‘금궤요략’ 에도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프고 가래가 많고 흐르면 감길탕 처방이 최선의 치료라고 한다. 옛 전매청의 야심상품인 ‘도라지 담배’ 도 도라지가 호흡기질환에 특효가 있는데서 착안된 담배였다.

 

 이같이 질경의 약효가 뛰어남을 미리 알고 있었던 다산은 도소주를 앞에 놓고 인생에서 제일 기쁠 때가 바로 “도소주 마시는 일” 이라 예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질경이 약효로 좋다는 것은 이미 조선왕실에서도 알고 있었다.

 

 인조(仁祖) 임금이 어머니(계운궁)의 상예를 치르면서 몸이 쇠약해지고 목소리가 작고 탁해지자 어의들은 ‘익위승량탕’이란 보약 처방에 질경을 넣어 복용케 했더니 목의 염증에도 효력이 뛰어났다. 이같이 길경은 약효가 있기 때문에 인삼과 비슷해 가짜 인삼을 만드는데도 많이 쓰여서 조삼(造蔘)이 약방에 나돌기도 한다니 조심해야할 일이다. 한 가지 꼭 알아둘 것은 인삼은 6년 근이 홍삼이 되지만 도라지는 6년을 넘기지 못하고 연식이 넘으면 썩고 만다. 하지만 3~4년마다 심은 자리를 옮겨 거름을 하지 않아도 모진 자생력으로 20년도 넘게 살아남아 약성이 좋은 도라지(질경)가 된다. 좋은 환경 보다는 척박한 환경에서 더욱 생장력이 강해진다.

 

 이렇듯 질경을 알고 있었던 다산은 지인이 들고 온 술 도소주가 건강에 최고의 효능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술을 받아 마시며 도소주를 예찬하는 시를 읊었으리라. 이와 같이 다산은 강진 보은산방에 유배생활을 하며 ‘목민심서’란 귀중한 책을 집필했다. 그의 3형제는 모두 예수(기독교) 때문에 멸문지화를 당했다. 형 약현은 사약을 받았고 식솔(부인과 아들)은 노비가 되어 제주도로 보내졌다.

 

 부인은 추자도에서 하룻밤 머물고 제주로 들어 갈 때 6살 된 아들을 추자포구 바윗돌에 내려놓고 떠났다. 그 아이는 어부의 양자로 입적되어 8대를 추자도에서 살고 있다. 둘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현지여인과 혼인해 아들 둘을 낳고 섬사람이 되었다. 약전은 이곳에서 지금도 수산관련 백과사전으로 불릴 만큼 방대한 자료를 정리한 ‘지산어보’를 편찬했다. 그러고 보면 이들 형제들은 조선의 천재들이었으나 때를 잘못 타고나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았다.

 

 오늘 저녁상 앞에서 다산이 기뻐했던 도라지(길경)와 방풍, 육계가 섞인 발효주는 아니지만 3년 근 인삼 30뿌리로 담은 20년 된 인삼주를 몇 잔 마시며 새삼 다산의 도소주 예찬 시 구절을 음미해 본다.

 

 “인생에서 제일 기쁠 때는 도소주 마시는 그때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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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12 [09:33]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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