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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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매(臘梅)는 피고
 
UWNEWS 기사입력  2019/01/30 [17:28]
▲ 한석근 前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UWNEWS

창을 열면 융동(隆冬)의 찬바람이 무법자 같이 방 안으로 뛰어든다. 밖을 한 동안 내다보노라면 귓불이 싸늘하다. 그런데도 엄동설한을 거슬러 양지쪽 마당가에는 붉은 바탕의 납매가 수줍게 피었다.

 

마음속으로 반기면서도 찬바람 앞에 움츠린 키 낮은 부용, 모란 , 개나리, 명자, 목매, 등 관목들과 키 높은 목련, 앵두, 모과, 매실, 왕벚, 등의 교목들이며 아직 땅속에서 고개 내밀지  않고 봄을 준비하는 달리아, 복수초, 민들레, 작약은 땅 기운이 오르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쉘리는 “겨울이 지나면 쉬 봄이 오련만”이라 했고 TS 엘리엇은 만물이 약동하는 생명의 사월을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 읊은 엘리엇은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이 감싸주었다”고 예찬했다. 새 생명이 태어나려면 그만한 산고를 겪어야 함을 “잔인한  달”로 말했으리라.

 

마당가에 수련을 담은 작은 연못도 수도꼭지도 얼음 속에 갇혀 깊은 동면에 빠진 듯 아무런 미물도 생명체가 정지된 듯 한 차디찬 마당 어귀에 홀로서 꽃피어 난 납매에게 “반가운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정색하듯 한 마디 쌀쌀 맞게 던진다.

 

“저런 미친 것, 동지섣달  맨 추위에 어쩌려고 벌써 꽃을 피웠나”싶다. 봄은 아직은 멀리서 다가올 기미조차 없는 얼음장 밑의 물소리도 숨을 멈춘 듯 조용하다. 남녘 제주에도 매화마저 꽃소식을 전해오려면 구정을 지나야 한다.

 

며칠 전에는 한풍이 비교적 세지 않은 농장에 심은 애기동백(산당화)이 붉게 꽃잎을 열더니, 납매도 질세라 득달같이 가지마다 진홍의 꽃잎 등불을 밝혔다. 아마도 거추장스러움이 없는 만물이 동면에든 이 시기에 고독한 개화의 여정을 걸어 유도처럼 봉긋한 봉인 뜯고 무더기 꽃을 피웠나보다.

 

꽃술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기하게도 꽃의 비밀을 엿보게 된다. 꽃잎의 바깥쪽은 적갈색이고 안쪽은 연노랑색이다. 두 겹의 화피조각이 차가운 공기로부터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고 있는 구조이다.

 

이른 봄에 꽃피는 나무들은 유난히 노란색 계통이 많다. 그러고 보면 개나리, 복수초, 민들레, 생강나무, 만화리, 산수유가 노랗게 핀다. 납매는 이 수종들보다 먼저 노란 꽃술을 내미는 전초병이다. 봄이 왔다고 알리는 꽃이 아니고 어서 오라고 봄을 맞이하는 애기동백과 납매이다. 애기동백(산당화)과 납매는 이름부터 꽃피는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납(臘)은 섣달을 이르는 글자이고 매(梅)는 매화를 말한다.

 

즉, ‘섣달에 꽃피는 매화’를 말함이다. 음력 12월에 꽃피는 한겨울의 꽃이다. 애기동백도(산당화) 중국에서 들여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가까이하며 즐겼다. 대륙의 기온은 차디찬 한풍이 몰아친다. 그 바람을 뚫고 피는 꽃이 애기동백이다. 이 두 나무는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이 없는 시기이므로 진하고 독특한 향기를 풍겨 멀리서 까지  찾아올 곤충을 부른다.

 

그래서인가?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결에 진한 꽃 향이 발걸음을 마당으로 불러낸다. 꽃 향은 달콤하고 신선하다. 이 납매도 우리나라의 토종이 아닌 중국에서 들여왔으므로 일명 당매(唐梅)라고도 부른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추위를 뚫고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에 비유해 납매를 한객(閑客)으로 예우하기도 했다.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김인후는 납매 한 그루를 마당의 한 모퉁이에 심고 소슬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융동에 피는 꽃이 없었기에 고절하게 피는 매화처럼 사대부들이 가까이 했으리라 여겨진다.

 

납매의 학명은 Chimonanthus Pracecox이다. 여기서 Chimonanthus는 겨울을 뜻하는 cheimon과 꽃을 뜻하는 anthos가 합쳐진 말이고, praecox는 ‘일찍 꽃이 핀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학명은 이른 시기에 꽃피는 납매의 특성에 치우쳐 지은 것이다.

 

이즈음 묘목 상에도 몇 가지 꽃이 개량된 납매가 나오며, 애기동백도 공급이 원활하다. 분주, 삽목, 취목, 기접이 원활하기에 공급이 활발하다. 하지만 순수토종이 아니면 향기가 덜하다.

 

납매와 애기동백은 향기로 사람을 유혹하는 나무이다. 이렇듯 겨울 꽃으로 사랑을 받는 이들은 향기 하나 만으로라도 족하므로 다름 정원수, 화목들이 봄의 상춘(賞春)을 뽐낼지라도 겸손하고 군자다운 모습으로 이 겨울을 이겨내며, 납매가 되니 훈훈한 향기로 고적하고 언 마음을 달래 주어 설레는 봄자리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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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30 [17:28]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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