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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1 독립만세운동 100주년, 다시 생각하는 대한민국 1
해외에서 먼저 독립선언 잇따라, 대한민국 선각자들 준비 기폭제
 
문모근 기자 기사입력  2019/01/18 [11:37]

 

[울산여성신문 문모근 기자] 1919년 3월,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 통치에 항거해 전국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만세 시위는 만주와 연해주, 미주 등지로 급속히 확산돼 해외 한인들도 이에 동참했다. 그야말로 범민족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일제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3·1운동을 진압했으나, 이로써 표출된 다양한 계층의 독립 의지는 이후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한 차원 높이는 동력으로 승화됐다. 

 

해외 독립운동과 독립선언을 연도별로 정리해보면, 1915년 대한 광복회가 결성되었고, 1918년 중국 지린 성에서 황상규를 비롯한 39명이 서명한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또 1919년 조선 유학생들의 주최로 동경 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 송계백 선생과 유학생 동지들     © UWNEWS

 

1919년 일본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기폭제

 

3·1운동의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것은 그해 2월 일본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이었다. 2월 8일 한국 유학생 200여 명은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유학생학우회 총회 자리를 빌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앞서 이들은 1918년 말 송년회와 이듬해 1월 웅변대회를 가장한 회합을 통해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한국 독립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해 독립선언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팔용(崔八鏞), 백관수(白寬洙), 송계백(宋繼伯), 서춘(徐椿) 등 10명이 실행위원으로 선출돼 구체적인 준비 작업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송계백은 국내로 밀파돼 최린(崔麟), 현상윤(玄相允), 최남선(崔南善) 등과 만나 독립선언의 취지를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이에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추진하던 인사들은 큰 자극과 충격을 받았다.

 

▲ 2.8 독립선언서 (출처 독립기념관)     © UWNEWS

 

고종의 갑작스런 붕어와 일제의 독살설로 반일감정 고조

 

국내외 정세 변화도 3·1운동이 거족적으로 전개된 데 영향을 미쳤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 등 전체주의 국가들의 패배로 마무리되자, 약소 민족들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제창과 전후 평화 유지 조치를 협의하기 위한 파리 강화회의에 고무돼 있었고,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도 이 같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국내적으로는 고종의 갑작스런 붕어와 일제의 독살설로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경술국치 이후 사실상 유폐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하던 고종이 1919년 1월 21일 밤 덕수궁 함녕전에서 식혜를 먹고 승하하자, 일제가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급속히 유포됐다. 여기에 일제가 한반도 강점 이후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전국의 토지를 멋대로 무상 침탈하고 조세 수탈을 강화하면서 농민들의 상실감과 독립에 대한 염원이 고조되고 있었다.

 

▲ 3.1운동 당시 모습     © UWNEWS



종교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제각각 독립운동 추진

 

이즈음 한국에서는 종교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제각각 독립운동이 추진되고 있었다. 

천도교에서는 손병희(孫秉熙), 최린, 오세창(吳世昌) 등이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한 끝에 1919년 1월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라는 3대 원칙을 세우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상해 신한청년당의 선우혁(鮮于爀)과 이승훈(李昇薰), 양전백(梁甸伯) 등을 중심으로 독립선언과 시위운동을 추진하고 있었고, 강기덕(康基德), 김원벽(金元璧)을 비롯해 전문학교 대표들도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마련하는 등 세부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동경 유학생들과 접촉한 천도교 인사들은 기독교계의 이승훈 등과 만나 종교단체의 독립운동 연합 문제를 협의하였고, 그 결과 2월 24일 천도교와 기독교가 연합에 합의했다. 이어 한용운(韓龍雲)을 통해 불교계까지 연합하였고, 기독교계인 박희도(朴熙道)의 주선으로 학생들까지 끌어들인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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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18 [11:37]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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