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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형
명분(名分)과 실리(實利)의 조화
기사입력: 2018/12/13 [11:35]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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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형 사회복지법인 경영인/전 울산대 교수     ©UWNEWS

세상을 살다 보면 “명분(名分)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실리(實利)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자주 부딪힌다. 명분을 취하자니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없고, 실리를 취하자니 양심이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사생활에서도 일어나지만, 국가나 사회 등 조직체계에서 자주 직면하게 된다. 명분(名分)이란 신분이나 이름에 걸맞게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일을 하기 위해 겉으로 제시하는 이유나 구실을 말한다. 어느 날 맹자의 제자인 진대가 물었다. “스승님!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절개(節槪)를 훼손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제후들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대답했다. “비굴한 타협으로 명분을 손상시킬 수는 없다. 타협을 통해 얻는 실리는 기본이 부실해 한계가 있다. 그것을 따라서는 아니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분과 실리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수없이 많다. 서양에서는 중세기에 ‘보편논쟁’이 벌어졌는데, 이 세상은 ‘보편’이라는 관념과 본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재론(realism)’과 ‘보편’은 그저 관념에 불과할 뿐 개개의 사물만이 존재한다는 ‘유명론(nominalism)’이 맞섰다. 이러한 논쟁은 이후 관념론과 유물론으로 크게 대립하였다. 동양에서는 명분을 중시하는 ‘주리론(主理論)’과 실리를 중시하는 ‘주기론(主氣論)’으로 대립하였다. 명분과 실리에 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크게는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에서, 작게는 각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명분과 실리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기집단의 대의명분만을 쫓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 중기의 사색당쟁(四色黨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효종(孝宗)의 다음 임금인 현종(顯宗) 때에 벌어진 예송논쟁(禮訟論爭)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이다. 명분 싸움이란 것이 고작 효종(孝宗)의 상(喪)에 계모(繼母)인 조대비(趙大妃)가 얼마동안이나 상복(喪服)을 입어야 옳으냐를 두고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싸웠다. 이러한 당파싸움은 14대 선조 때 시작되어 22대 정조 때까지 200여 년이나 이어졌으니, 그동안 국가(國家)의 대사(大事)는 모두 방기(放棄)한 채, 민생은 도탄(塗炭)에 빠져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나 사회가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기준이 되는 도리와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정당한 원칙이 없이 제멋대로 한다거나, 편법을 쓴다면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권이 국익을 도외시하고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혁명이나 전쟁을 일으키는 집단은 항상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내세운다. 만약 자신들의 대의명분이 사회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그 혁명이나 전쟁은 반드시 실패로 끝날 것이다. 명분은 절대불변의 가치나 이념이 아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끝임 없이 변한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그 집단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은 크게 달라진다.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아우르는 황금률은 없을까? 불교의 중도(中道)나 유교의 중용(中庸)의 이치를 적용하여 이 문제를 풀어보자. 즉, 실리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명분을 추구하고, 명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명분과 실리가 충돌할 때는 어느 한쪽에 편향되거나 편중되지 않고, 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국가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명분에 치우쳐 실리를 놓치면 나라 경제가 파멸의 위기에 빠지고, 실리에 치우쳐 명분을 놓치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명분이 잘못되었다면 하루빨리 고쳐야 하고, 실리를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되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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