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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남문 초록바위 서천교 전주숲정이 치명자산...아, 전주천! 전주천은 천주교인들의 순교의 피가 마를 날이 없던 곳
기사입력: 2018/11/16 [11:2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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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편집국장

 

[울산여성신문 원덕순 편집국장] 전동성당을 나와 지척에 있는 풍남문으로 갔다. 풍남문은 보물 제308호로 조선시대의 성문이다.  

 

全州府성의 4대문 중 남문인 풍남문은 전주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했으나 천주교 역사상 한국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 등 초대 전주지방 교회의 지도자급 인물들이 순교한 곳이다. 1388년 고려 공양왕때 건설했으나 1767년 조선 영조때 화재로 소실되고 그 해 9월부터 전라도관찰사 홍낙인이 재건했다. 북면에 ‘湖南 第一城’이라고 쓰여진 것처럼 전라도 관찰사가 있던 전주부성의 위용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홍루가 있는 성문이었다.  

 

초록바위로 가기위해 돌아서는데 풍남문 네거리에서 걸음이 멈춰졌다. 세월호 분향소가 희생자들의 사진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위한 서명과 리본나눔’ 을 하고 있었다. 

 

 

전국 분향소를 철거하는데 왜 아직도...? 라는 질문에 그들은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실규명과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어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대답을 들으며 과연 전주인들의 정신은 꼿꼿하다는 생각을 했다. 

 

2Km 반경 안에 있는 초록바위 순교지를 찾아 아직은 덥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전주천을 따라 걸으며 내려다본 싸전다리, 지금은 발목 깊이인 이 강이 수장 당한 교인들에겐 얼마나 깊고 차가웠을까? 순교자들의 거룩한 순교정신을 다시 새겨보았다. 초록바위는 순교터임을 알리는 조형물만 설치돼 있었고, 옆에 서있는 비석이 1866년 병인박해때 서소문밖 사거리에서 순교한 남종삼과 홍봉주의 14살 아들 둘이 수장된 곳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남종삼, 홍봉주의 두 가족이 처형당하고 난 뒤, 남은 두 아들은 14세로 나이가 어려 전주감옥에 수감돼 있다가 일년 뒤 가을 이 곳 초록바위에서 전주천에 밀어넣어 수장시켰다.  순교한 두 어린 아들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서천교로 향했다. 

 

15세 어린 두 순교자 남명희 등을 수장시킨 초록바위에서 길을 따라 걸으니 가슴이 아려왔다. 초록바위에서 불과 1키로도 안되는 곳, 서천교에서 또 다시 치명이 있었으니...

 

1866년 12월23일 서천교 아래에서 조윤호 요셉이 18세의 어린 나이로 순교했다. 어린 조윤호는 1866년 12월5일 부친 조화서 등과 포졸들에게 체포돼 투옥되고 이들 부자는 혹독한 고문과 배교의 강요로 고통을 받았음은 자명한 일.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마음이 변해 신앙을 배신할까? 격려하며 “걱정하지 말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12월13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았고 아들 조윤호는 12월23일에 순교했다. 전주감영이 있던 전동성당 부근 전주천은 순교자의 정신이 살아있는 듯, 한 걸음 한 걸음도 무겁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전주숲정이는 숲이 우거져 ‘숲정이’ ‘숲머리’라고도 불리는데, 1801년 유항검의 가족이 처음 참수되면서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은 곳으로 유명하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무명순교자들이 치명한 곳이다. 1984년 전북 기념물 제71호로 지정이 되었고 이곳은 윤호관으로 불리던 체육관이 청소년교육과 행사를 하는 곳으로, 18세 순교자 조윤호의 이름을 기리며 이름을 지었다한다.  

 

천주교에서 널리 표상으로 삼는 동정 부부인 유중철과 부인 이순이, 1801년 순교한 유항검 부인 신희, 둘째 아들 부부와 조카 7명의 유해가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는 치명자산을 찾아갔다. 이미 해는 기울고 있고 아름답게 꾸며진 치명자산 성지는 지방기념물 재68호로 해발 300m 중바위산에 세계교회가 동정 부부의 순결과 고매한 신심과 순교정신을 높이 기리기 위해 산정에 모셨다 한다. 

 

비신자라 해도 한 번쯤은 찾아가볼만한 아름다운 무덤이었다. 주차장으로 오는 길 내내 순교자들의 높은 신앙을 본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경기전의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운 유적들

 

전주 성지순례를 끝내고 다시 전주 한옥마을로 돌아와 경기전 관람을 시작했다.

한옥마을은 경기전을 중심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어있다.  경기전은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정전이다. 보물 1578호이다. 태조의 영정은 어용전이란 이름으로 전주에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종전으로 불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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