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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자의 세상사 담론
책임 없는 사회는 천민사회
기사입력: 2018/09/21 [16:4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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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본지 논설위원     ©UWNEWS

지금 우리 사회는 예측 안 되는 혼돈사회다. 뭔가 꽉 막힌 듯 답답하다. 어디에서도 속 시원한 리더십을 볼 수 없다. 상식이 통하고 예측 가능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은 불안하지 않다. 신뢰사회는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상대가 화를 낼 거야 이렇게 하면 즐거워 할 거야’ 행위예측이 된다. 반면, 천민적 사고가 횡횡하는 곳은 행위예측이 어렵다. 

 

 

며칠 전 대낮, 서울역 광장에서 목격했다. 술에 취한 노숙인 같은 이가 대로변에 소변을 보는 중이었다. 우리 사회의 천민적 모습을 생각했다. 현대판 천민성은 공유하는 규칙이 없는 것이다. 규칙 자체의 부재가 아니다. 규칙을 수용하고 내면화한 책임감의 부재다. 규칙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성의 부재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천민성이다. 사회 지도층까지 천민 의식으로 충만한 것은 더 큰 문제다.

 

그들은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책임을 면하거나 전가한다. 책임감이 없기에 리더십도 옅어져 간다. 리더십이 없는 사회는 위기가 찾아온다. 왜 사회지도층까지 이런 천민성에 물들었을까? 사회지도층이 되는 엘리트충원 과정을 보자.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는 사회지도층으로 진입하는 핵심 경로다. 이 시험들은 죽기로 매달려야 합격하는 시험이다. 모든 지적 정서적 자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인문학적 사고와 소양을 갖출 여력이 없다. 성공에 대한 집착, 돈과 인생 투자에 대한 미련 등으로 점점 초조해 질 뿐 아니라, 응시자는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이들은 엘리트가 된다. 이들이 시험 합격 능력 외에 다른 영역이 탁월한 것으로 검증된 것도 아니다. 나와 동등한 인격적 존재이며 대화의 상대로서 타인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득이나 공감이나 감동이라는 관계적 가치를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부족한 자신의 결핍을 사회적 지위와 권력으로 억압하며 주장을 관철한다.

 

한마디로, 이런 경로를 거친 엘리트들은 대체로 설득보다는 갑질이 손쉬운 의사소통 수단으로 간주된다. 모든 지도적 공직자에게 강제 청문회 제도가 있어, 억지로라도 동등한 대화의 자리로 불러내면 어떨까? 그들에게 시민의 행복에 대해, 공직자의 책임에 관해 반드시 답하도록 한다면, 더 높은 엘리트가 되기 위해 대화하고 공감하는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을까? 국민 형편에 공감하지 못한 소득주도 성장론과 최저 시급인상은 어떤가? 전형적인 엘리트주의 책상이론이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란 명분 말고는 한 번도 시행되어 검증된 적이 없다. 때문인지 애초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자 수는 떨어지고 소득증대는 감소하고 있다. 나쁜 정책이어서 인가? 현실과 부정적 파급력을 예측하지 책상머리 이론이어서인가? 

 

정책입안자들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비명을 엄살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강조하는 사람중심경제는 누군가를 희생시켜 다른 이를 좋게 하는 정책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아픈 사람이 발생한다면 그들을 위로하고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 아니 발생할 것은 예측하고 대안을 준비했어야 하는 것이, 국민인 그들에 대한 책임이고 공감의 정책적 표현이다.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세워진 140개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다. 1960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도 우리보다 3배 4배나 소득이 높았다. 그들이 1배 성장할 때 우린 10배, 20배, 24배로 성장했다. 민주화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만큼 눈부시게 발전했다. 자부심을 가질만한 세계사적 성취다. 그러나 이런 외적 성취 이면에는, 치열한 성장을 향한 자유 경쟁이 내면화되고 타인에 공감하지 못한 내적 혼돈을 잉태하고 말았다.

 

공감이 필요하다. 공감을 창출하지 못하면 소득이 높고 사회제도화 수준이 높아도 그곳은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하고 미성숙한 곳이다. 공유하는 감정, 마음, 가치가 단절이 있으면 공동체적 합의도 도출되지 않는다. 사회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사회의 일원인 우리가 각각 다른 소리를 내어도 화음이 되고 다른 주장과 이념이 있어도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를 이루어 내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할 시민사회 모습이다.

각각 다른 발원지의 시냇물이 마침내 하나의 강물이 되 듯, 공감의 장이 책임의식이요 주인의식이다. 공감이 이 민족을 살린다. 우리 모두 이 나라의 주인이기에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공감의 장이 출현하도록 공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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