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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근
점화(點畵)
기사입력: 2018/08/23 [17:1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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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근 前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UWNEWS

  서양화가 그 동안 세계의 그림시장에서 수 십~ 수백억을 호가하며 대세를 이루었다. 그에 반해 한국화(동양화)는 초라하게 꽁무니에도 못 미쳤다. 그러던 한국화가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이 빛을 발하면서 억대 반열에 올랐다.

 

 근래에 들어서는 김환기의 그림이 수십억대의 평가를 받는다니 뒤 늦게나마 이제 한국화가도 한 몫을 할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동안 동양화가들은 옳은 평가는 커녕 아주 혹평을 받는 처지에 있었다. ‘이발소 그림’ 이니, ‘싸구려 그림’으로 평가 받아 왔다.

 

 언제부터인가? 근대 작가 중 천경자의 그림이 위작 논란에 시달리면서 그의 천재성도 먹칠이 되었고, 그의 자화상 명작도 아직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채 미궁에 빠져 있다. 이런 시점에서 박수근의 ‘빨래터’, 으중섭의 ‘흰소’를 비롯한 김환기의 ‘점화’ 연작이 당당히 세계 그림시장에서 명작 반열에 오르고 있다니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김환기를 있게한 사람은 그의 부인인 변동림(1916~2004)의 내조가 큰 몫을 했다. 변동림은 고종 말년 중추원 참의를 지낸 변국선의 딸이다. 그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를 다닌 재원(才媛)이었다. 그의 본명은 동림 이지만 일찍 결혼하여 이혼한 뒤 김환기와 재혼하였다. 김환기는 딸셋을 둔 이혼남 이었다. 그와 재혼 한 후 남편의 성과 아호인 향안(鄕岸)을 받아 김향안으로 개명하여 평생을 지냈다.

 

 사실 변동림은 이화여전 영문과를 다니던 스물 한 살 때 봇다리 하나를 들고 가출해 천재 작가 이상과 동거를 시작했다. 둘은 함께 동경으로 갈 계획을 하고서 결혼식을 치루고 3개월 후 도쿄로 떠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상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석방되었으나 폐결핵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변동림은 이상이 사별한 7년 뒤 김환기를 만나 재혼을 했고, 두 사람은 예술가의 뮤즈(Muse : 예술가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 넣는 여신)로 변신했다.

 

 김환기는 “ 내 예술이 세계 수준에 비해 어디쯤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구나” 하면서 고민할 때, 부인 향안도 미술평론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어느 날 남편이 “나 파리에 가야겠다”고 결심하자 향안은 그날로 즉시 프랑스어 교본을 구입해 독학을 시작했다. 6.25 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된 다음 해에 향안은 혼자서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먼저 떠났다. 김환기는 한 해 뒤 1956년 5월에 파리에 도착했다. 그 후 둘은 얼마간 파리에 머물다 1964년 미국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뉴욕에 온 김환기는 매일 10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 때 그린 것이 점화의 연작이다. 6년 뒤 6월 7일 점화 연작 가운데 한 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가 제 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1974년에는 “세계 지도를 좀 연구하자. 우리도 여행하게” 라고 말하던 김환기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남편을 사별한 김향안은 혼자서 수 십년간 수첩에 꼼꼼히 단상을 적었고, 시간 날 때마다 뒤적이며 추억을 곱씹었다. 향안은 그 수첩들을 ‘인생의 반려’로 끔직히도 아꼇었다. 그것은 “인종차별의 아픈 세월을 견디며 투쟁과 항거의 의지”를 굳건이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수첩마저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절규처럼 외쳤다. “이 무섭던 날을 계기로 나의 수첩들은 사라지고 수첩의 기억만이 남았네” 라고 토로하며 2004년 뉴욕에서 눈을 감았다.

 

 나는 떠나 간 두 사람을 연모하며 김환기의 화첩을 펼쳐놓고 그가 남긴 명작 연작 ‘점화’ 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를 훓어 보다 멍 하니 창밖을 내다 본다. 처마 끝 구름 한 점이 빈 하늘에 ‘점화’ 처럼 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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