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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형
독서(讀書)의 생활화
기사입력: 2018/08/09 [17:2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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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형 사회복지법인 경영인/전 울산대 교수     ©UWNEWS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1960년대는 아직 경제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모든 물자(物資)가 귀했다. 서적(書籍)도 예외가 아니었다.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읽을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초등학생이 읽을만한 책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고작해야 학교 도서실에 듬성듬성 꽂혀있던 아동문학 전집을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읽었다. 그때는 책이 귀해서였을까? 한번 책을 잡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읽곤 하였다. 전깃불도 없던 시절이라 호롱불 밑에서 코끝이 새까맣게 그을리도록 열심히 책을 읽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두꺼운 소설류를 찾아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춘원 이광수의 「흙」, 「사랑」과 같은 국내소설도 읽고, 도스토예프스키(Dostoyevsky)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같은 해외소설도 읽었다. 한창 사춘기(思春期) 시절이라, 위대한 소설가들의 명작소설을 읽으면서 사랑과 갈등, 배신 등 복잡하고 오묘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통찰할 수 있게 되었고, 계몽사상과 인본주의 등 세계 인류사의 조류(潮流)를 이해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나름대로 인생관과 세계관을 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독서(讀書)란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서적을 통해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물과 세상에 대한 사고의 틀을 넓힐 수 있다. 나아가 독서는 다양한 간접경험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중한 지혜를 습득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기도 하다. 독서는 책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읽고, 책 속에서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독서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독서를 통해 위대한 꿈을 꾼다”고 하였다.

 

독서는 어떤 목적이 있거나 시간이 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식사를 하듯이 꾸준하게 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 만주 하얼빈역에서 조선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뤼순 옥중에서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붓글씨를 남겼다. 독서의 생활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 것이다. 사형당하기 직전에 사형 집행인이 안중근 의사에게 물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이 있으면 말하시오.” 그러자 안중근 의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5분만 시간을 주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소이다.” 그리고 주어진 5분간 책을 읽은 뒤 집행인에게 “고맙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담담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唐)나라의 문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년) 선생은 권학문(勸學文)이라는   시(詩)를 통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 선현(先賢)이 남기신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일깨운다. ‘한 달에 한 권씩 책 사보기’,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시간 보내기’, ‘책 들고 다니기’ 등을 습관화하여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有田不耕倉凜虛 (유전불경창름허)
논밭이 있어도 경작하지 아니하면 창고가 비고
有書不敎子孫愚 (유서불교자손우)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이 우매하다
倉?虛兮歲月乏 (창름허혜세월핍)
집안에 곡식창고가 텅 비면 세월이 궁핍해지고
子孫愚兮禮義疎 (자손우혜예의소)
자손이 우매하면, 예의가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若惟不耕與不敎 (약유불경여불교)
만약에 경작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다면
是乃父兄之過歟 (시내부형지과여)
이것은 바로 부모와 형제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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