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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근
수능을 마친 아름다운 청춘에게
기사입력: 2017/12/06 [12:3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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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모근 시인/본지 편집위원     ©UWNEWS

수십 년이 지난 일이다. 그 때도 대학을 가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형편이 어려운 대로 그만한 스트레스가 있었고, 그나마 조금 괜찮은 집안에서 자란 학생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안고 고3시기를 지냈다.

 
대입이라는 게 사실 고3 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부터 희망하는 대학을 적어내기를 지시하는 선생님과 지속적인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공부가 뒤처지면 남아서 공부하기를 지시하고, 정해진 하교시간은 지키는 게 아니라 무시하고, 학교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다가 귀가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수학여행은 1학년 때나 2학년 때 다녀오는 것이 정례화 되었다. 고3은 오로지 ‘공부’에 이끌려 다녔고, 고3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때였다. 학교가기 싫어서 하루 결석하면 그 뒤에 따라붙는 불량학생이라는 꼬리표가 졸업을 하고도 회자되는 시기였다.

 
그래도 선생님과 부모님 몰래 조금씩 일탈의 쾌감을 즐기던 아주 약간의 만들어진 시간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떠오르는 것을 보면, 통제되고 틀에 박힌 것을 탈출하여 소위 ‘자유’라고 명명했던 젊은 청춘의 호기심과 열정이 기억난다.

 
그것은 젊기 때문에, 젊은 청춘이기 때문에, 아직 사회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래야만 어른들의 추억담이 생기고,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1세기, 2017년의 수험생인 고3학생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고 해마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오로지 대학입시에 열중하기도 하고, 개인의 특기를 살리기 위해 정규교육과정보다 홀로 인생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다.

 
주어진 상황을 자신에 맞게 선택하고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견할 뿐이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대학을 진학할 때 자신의 특기와 재능을 키우기 위해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수험생들이 얼마나 될까. 선망하는 학과보다 성적에 좌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가운데 실업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보도를 읽거나 청취하고 나면 괜한 허탈감에 빠지기도 할 테고. ‘그래서 우리더러 어쩌라고’하는 취준생들의 따가운 눈총을 기억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다양하다’는 표현으로 여론을 조장하는 사례가 더러 있다. 다양하다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그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통상적인 시각과 관습, 또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에 있다.

 
또 우리 청춘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덩어리가 얼마나 되는지, 몇 가지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들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도와주는 시설이나 기관이 없는 것도 지적한다.

 
물론 진로상담이나 진학상담은 학교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살아갈 삶의 시작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세상을 보는 시각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수능을 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수험생들이 자신의 인생과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첫걸음이라고 본다. 대학을 진학하고 학사과정을 모두 마친 뒤 맞닥뜨릴 기성사회의 복잡한 경쟁구도와 층층시하의 구조,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서게 될 수험생들에게 고생했다는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둔하지 않고 영리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거나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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