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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고 김원기 체육인/ 84년 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원덕순 편집국장 기사입력  2017/08/17 [12:19]

 건국 후 두 번 째 금메달을 국민들에게 안겨준 ‘레슬링영웅’

 

은퇴 후‘금메달스포츠봉사단’을 결성,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봉사 2백여회

 

▲   금메달을 받고 금의환향하는 김원기 선수  © UWNEWS

 

“대한민국에 이바지한 체육인의 삶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생 2막을 다시 시작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헌신한 정신을 높이 기리며 영면을 빕니다”

 

[울산여성신문 원덕순 편집국장] 김원기(55세) 그를 일러 체육인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스타’라고 불렀다. 반듯한 용모와 바른 인성,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아름다운 품성으로 언제나 주위에 밝음과 훈훈함을 안겨주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 그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지난 7월27일 치악산 등반 중 심장마비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데려가신다 했던가? 그의 절친한 선배인 쌍산 김동욱 퍼포먼스서예가가 전하는 서울 목동 이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김원기 선수의 평소의 인간관계를 보여주듯, 양정모 선수, 하형주, 유인탁, 장정구 선수를 비롯한 체육계 거목들이 참석해 그의 가는 길을 잘 배웅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해 조문하고 부인과 상주들을 위로했으며 선배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영정사진을 들고 빈소를 떠날 때 장례식장은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실천으로 보여준 체육인이었다.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를 다시 쓴 김원기선수는 선수은퇴 후, 삼성생명 사원으로 일을 하면서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일에 앞장서왔다.


“김원기 선수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스포츠 스타이며 영웅입니다. 투철한 국가관과 봉사정신으로 사회를 위해 드러내지 않고 봉사해온 의인입니다”

그의 레슬링 선배인 쌍상 김동욱 서예가는 말한다. 진정한 의인이라고!!  


6년 전, 김원기 선수가 지인의 소개로 울산여성신문을 방문했다.
“어?” 김원기 선수를 처음 만났을 때 약간은 의아했다. 레슬링선수라는 선입감때문일까? 그는 평범한 직장인같은, 한편으론 성직자같은 단아한 모습이었다.


1984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 온 국민이 경제부흥에 힘을 쏟아 기진맥진해 있었으며 부강하지 못한 스포츠 약소국이었다.


그런 국민들에게 크나큰 기쁨을 주었던 LA올림픽에서의 금메달소식. 그리고 레슬링의 그레코로만형 62Kg이란 생소한 체급을 알려주었던 김원기란 이름! 물론 최초로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정모선수는 국민영웅이란 칭호를 받기도 했지만... 그 이후 두 번 째 금메달의 환희를 안겨준 국민스타 체육인으로는 너무 소박한 모습이었다.

 

필자는 김원기선수의 금메달은 개인의 영광이기도 했겠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는 큰 기쁨과 희망의 선물이어서 고마웠다는 인사말을 했다. 그는 꾸밈없는 편안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며 헤어질 때 “올곧은 울산여성신문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진심으로”라는 글을 싸인과 함께 써서 게시판에 붙여주었다.

 

그리고 신문사가 주최하는 ‘울산태화강전국걷기대회’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함께 걷기로 했었는데...이런 비보를 듣게 돼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그의 국가관과 인간 됨됨이가 주위에 널리 알려져 그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김원기선수의 살아온 궤적을 한번 더듬어보고자 한다. 김원기선수는 전남 함평 출신으로 함평농고 1년에 레슬링을 시작해 1984년 LA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건국 후 두 번 째 금메달을 따내 스포츠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선수은퇴 후의 그는 많은 인생의 난관을 의연히 물리치고 시간만 되면 봉사에 전력했다.


20년 전부터는 ‘금메달스포츠봉사단’을 결성해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소록도를 찾아가 위문공연과 함께하는 자장면 봉사를 하는 등 봉사는 200여회를 넘어섰다. 교도소를 찾아가 무료강의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힘닿는데 까지 사회를 위한 일을 더 많이 하고싶다던,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원기 선수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김원기선수는 생전의 공로로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으며 1989년 전남대에서 운동생리학 석사를 취득, 2009년 경희대에서 체육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가 대한민국에 이바지한 체육인의 삶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생 2막을 다시 시작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헌신한 정신을 높이 기리며 그의 삶을 뒤짚어보았다.


“김원기 선수의 영면을 빕니다!” 

 

▲ ‘양정모(좌,두번째) 금메달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故김원기 선수(좌,네번째)    © UWNEWS

 

▲  쌍산 김동욱 선생의 故김원기 선수 추모퍼포먼스   © UWNEWS

 

▲  故김원기 선수의 장례식장을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   © UWNEWS

 

▲  故김원기 선수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엄홍길 대장   © UW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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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17 [12:19]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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