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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이영숙 재능시낭송가
기사입력: 2017/07/20 [17:3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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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편집국장
▲   이영숙 재능시낭송가  © UWNEWS

 

“하고싶은 일 다 해보고, 타고난 재능으로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로사’등 3편 카톨릭문학상 신인상 수상...신석정의‘어머니 기억’추천
17년간‘부강서실’운영하다 자원봉사자의길로, 14년 시각장애인 위한 목소리봉사


 

[울산여성신문 원덕순 편집국장] 태어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도 없지만 ‘인생이란 것이 우리가 생각한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회자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온 이영숙씨는 서예가, 자원봉사자, 시낭송가. 이젠 시인이란 이름도 가지게 되었다.

 

이영숙씨는 2017년 발간된 계간지 ‘부산카톨릭문학’ 35호에서 ‘가족사진’ ‘로사’ ‘꽃 그리고 훈장’ 3편으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시인으로 등단했다. 60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시인등단은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상처도 나누어 갖고 살아온 얼굴들이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먼 세월 가족사진은 온 가족이 지고 갈 생의 부록..중략”

 

“...생전에 좋아하시던 장미꽃 속에 누워 하느님 품에 안기신 나의 어머님 혹여나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을 때 이름을 불러주세요. 늘 촛불 들고 기다릴께요”  ‘로사’중.

 

여든 아홉에 세례 받고 아흔 한 살에 저 세상으로 보속의 눈물로 보내드린 어머니 ‘로사’에 대한 회상은 애절하다. 그는 말한다. “그림은 그리움의 다른 말, 시인은 언어로 그림을 그린다”고.

 

그리고 어린 소녀 적 시인에 대한 꿈을 50여년이 지나 이루게 되었다고. 그러나 그는 여느 등단인들처럼 쉽게 등단하는 문학도가 아니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인생의 연륜과 경험으로 늦게서야 겸손되이 숙제장을 내밀어 상을 받게 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시 창작교실에서 다년간 공부했고 시낭송으로도 5년여 시를 접하고 문학적 소양을 쌓아왔다.

 

“제가 인덕이 좀 있는 편입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 결혼하면서 울산으로 정착해 울산에서 뿌리를 내리고 43년을 살았다. “울산이 고향인 셈이죠. 그동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제가 하는 일은 뭐든지 잘 한다고 믿고 칭찬하고 맡겨주는 남편 덕에 오늘 날 제가 있게 된 거라 생각합니다”

 

 

        어머니 기억    

 

                  -어느少年의-                                            

 

                             신석정

 

 

비오는 언덕길에 서서

그때 어머니를 부르던 나는 소년이었다.

그 언덕길에서는

멀리 바다가 바라다 보였다.

빗발 속에 검푸른 바다는 무서운 바다였다.

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는 이내

메아리로 되돌아와

내 귓전에서 파도처럼 부서졌다.

아무리 불러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고,

내 지친 목소리는 해풍 속에 묻혀갔다.

층층나무 이파리에서는

어린 청개구리가 비를 피하고 앉아서

이따금씩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청개구리처럼 갑자기 외로왔었다.

쏴아... 먼 바다소리가 밀려오고,

비는 자꾸만 내리고 있었다.

언덕길을 내려오노라면

짙푸른 동백잎 사이로 바다가 흔들리고,

우루루루 먼 천둥이 울었다.

자욱하니 흐린 눈망울에

산수유꽃이 들어왔다.

산수유꽃 봉오리에서 노오란 꽃가루가

묻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본 나는

그예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말았다.

보리가 무두룩히 올라오는 언덕길에 비는 멎지 않았다.

문득 청맥죽을 훌훌 마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것은 금산리란 마을에서

가파른 보리고갤 넘던

내 소년 시절의 일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어린 시절의 정서가 함께 아련한, 인간 본연의 내면을 그려내는 신석정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고 추천한다.

 

그는 이력도 다양하다. 목소리를 재능으로 받았으니 그것을 잘 써야한다는 생각에 목소리 봉사를 소리소문 없이 14년 동안 해오고 있다. 울산시각장애인복지관 봉사자 대표회의 회장을 맡아 녹음봉사와 모니터링 봉사, 울산월평성당 미사해설, 시낭송으로도 봉사를 하고 있다.

 

17년간 운영한 ‘부강서실’ 또한 그의 끈질긴 집념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향교 전교이셨던 친정아버지의 먹을 갈며 어깨너머로 서예를 익혔지만 결혼 후 둘 째 애를 업고 다니며 서예에 정진할 정도로 끈기가 대단했다. 잘 되던 서실을 17년 만인 2007년에 접은 것 또한 대단한 용기지만 그 결심이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결심에서였다고 하니 그의 확고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도 있겠다.

 

나이 50에 하고자 했던 일을 실행해 독거노인 목욕봉사, 도시락배달 등 노력봉사를 오랜 세월 해왔으나 그 일도 이제는 힘에 부쳐 목소리봉사를 하며 공부에 정진하고 있다.

 

울산시장상, 교육감상을 두루 받은 그는 인생농사 또한 잘 지었다. 아들은 공학박사로, 딸은 IBM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남편 김근호씨는 SK에너지 퇴직 후 태화강시니어 합창단에서 테너로 활동하고 있다.

 

귀가가 늦어지면 “부인, 집으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셨나요?”하고 농담으로 재촉하는 남편과 알콩달콩 살고 있으며, 중구청 평생교육원에서 시낭송아카데미 강의도 맡아서 하고 있는 시니어 리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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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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