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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근
입양 간 수수꽃다리
기사입력: 2017/07/03 [09:2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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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근 전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UWNEWS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진주엘 간다.


매월 경남수필문학회 월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내년이면 30년이 되니 오래도록 쫓아다닌 편이다.


십 여 년 전까지는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오갔으나 이즈음인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해 왕래한다. 나이가 듦에 야간의 시력이 떨어져 승용차로 왕래하기를 포기한 셈이다.


두 시간 20여 분 소요되면 진주산업대학 정류장에서 예술회관 뒤쪽까지 걸어서 모임장소에 이른다. 한참을 걸어야 하지만 굳이 대학의 운동장 옆을 지나서 걷기를 즐겨 한다. 고색창연한 오래된 교사건물도 눈을 즐겁게 하지만 그보다 울창하게 자란 수목들이 눈길을 빼앗아 즐거움을 안겨준다.

 

나무이름도 생소한 표찰을 달고 하늘 높이 자란 정원수는 백 년이 훨씬 넘어 보인다.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종가시나무, 좀물푸레나무 등 서로 키를 다투며 허공이 좁다 할 만큼 솟아있다. 우리나라 토종 나무들보다는 외래종인 개잎갈나무(히마리아시다), 버짐나무(푸라타나스), 종가시나무 등의 성장력이 월등해 우리의 고유한 수종보다 웃자라서, 광합성 작용에 떠밀려 쇠약해진 우리 수종의 가지 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이 더했다.


학교 구내 수목원을 지날 때는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 탁한 도심의 공기를 정화해주는 숨 그늘에서 잠시라도 맑은 산소를 폐부에 더 많이 저장하기 위해서이다. 크게 심호흡을 여러 번 하면서 숲을 빠져나오면 후원이다. 넓은 후원에도 젊은 나무들이 많다. 그런데도 봄이어서 여백이 있는 곳에 정원수를 심고 있었다. 여남은 걸음 멀리서 보아서는 무슨 나무인지 잘 몰라서 가까이 다가서 보니 알 듯 말 듯 새롭게 느껴졌다.

 

60여 년 나무와 함께해왔지만 확실히 알고 싶어서 일하는 조경사에게 “이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물으니 귀찮은 듯 힐끗 쳐다보고는 “미스 킴 나이락”이랬다. 미스 킴 나이락은 생소한 이름이어서 궁금증을 가지면서 모임 장소에 도착해 반가운 문우들을 만났다


진주에서 돌아온 뒷날 어제 산업대학에서 들었던 그 라일락을 지인에게 물었다. 대학 강의 중이어서 30여 분이 지나서 회신이 왔다.


한국 토종 수수꽃다리의 개량 종인 미스김 라일락은 미국에서 개량해 만든 품종이다. 70년 전 미국 땅으로 흘러가 다시 70년 만에 수백 그루가 귀향했다. 재미 환경운동가 백영현 그린클럽 회장이 경기도 광릉 수목원에 기증했다. 백 회장은 어린 미스김 라일락 300~500그루를 귀향 프로젝트 사업으로 지난 해 추진했다.


미스김 라일락은 광복 이후 미 군정청자문관으로 한국에 있던 식물학자 엘윈 미더(1910~1996) 럿거스 대 교수가 가져간 것이다. 1947년 북한산 인근에서 야생 라일락(수수꽃다리) 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가서 개량해 만든 품종이다. 원래 나무 이름도 알 수 없었던 미더 교수는 서울에서 비서였던 타이피스트의 성 ‘김’을 따서 꽃 이름을 붙였다. 미스김 라일락은 모종(母種)인 수수꽃다리에 비해 꽃이 훨씬 아름답고 향기가 강하게 풍긴다. 이 꽃이 미국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는 꽃인데, 정작 모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미국의 뉴욕 맨해튼의 상징인 센트럴 파크에는 미스김 라일락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가장 많이 사랑 받으며 많이 찾는 꽃도 이 품종이다.


26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백 회장은 2001년 뉴저지 주 페어론의 한 양로원 마당에서 이 꽃을 발견했다. 보는 순간 꽃의 아름답고 짙은 향기에 매료되었다. 이 꽃이 미국 입양 한국식물 1호라 부르며 직접 재배하고 학교와 관공서에 기부하며 20개 프로젝트도 진행해 왔다.


지난 5월 25일부터 뉴저지 주의 코리아 커뮤니티센터에서 미스김 라일락 사진 수백 장과 꽃의 역사를 알리는 사진전을 연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전시회 제목이 ‘70년 만의 귀향, 미스김 라일락’이라 했다. 그렇게 돌아온 꽃나무가 품종이 조금은 변형되었지만 다시 이 땅에 심어져 꽃피어 향기 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올해 봄, 심어진 미스김 라일락이 내년 봄이면 가지마다 주절이 꽃 피어 진한 향기를 온 교정에 풍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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