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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러시아는 우리에게 어떤 이웃인가?
기사입력: 2017/05/25 [18:3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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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본지 논설위원     ©UWNEWS

 정동공원 언덕위에는 하얀 삼층탑이 있다. 1890년에 세워진 러시아 공사관의 흔적이다. 명성황후가 시해 당한 후 일본의 핍박을 피해 러시아에 몸을 의탁했던 고종의 아관파천 현장이다.

 

필자는 가끔 그 언덕에 올라, 한반도의 미래를 펼쳐 보며 생각한다. 러시아는 우리에게 어떤 이웃이었던가? 미국, 중국, 일본이 한반도 찬탈의 야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러시아는 최소한 돕는 척을 했다. 당파 싸움, 혼탁과 부패의 늪에서 허덕이는 조선말의 무능함을 돕고자 한 러시아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국제정치 무대에서 벌이는 노회한 회유였을까?


그런 러시아가 강력한 영향력을 다시 뿜어내고 있다. 남하정책을 추진 중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힘은 트럼프, 아베, 메르켈에 이어 시진핑의 구애를 받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 정보분석부(SVR)의 힘은 지구촌을 시야에 두고 있다.


러시아의 역사를 훑어보자. 현재의 러시아는 천년 전 지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백러시아 민족의 공동 조상인 슬라브족에서 기원한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할 즈음,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는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동방정교회 역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아래 들어가게 되자, 러시아 정교회가 대주교구로 격상되고, 모스크바는 콘스탄티노플을 대신하는 ‘제3의 로마’라는 자부심이 생겨났다.

 

오랜 정체기 후에 1721년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전(全) 러시아 황제로 추대되어 러시아 제국을 열게 된다.

 

그 후 제정러시아는 유라시아에서 많은 역할을 감당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아울렀지만 1917년 3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1922년 12월 30일 레닌의 소련제국이 탄생으로 막을 내린다.

 

이어 130여 민족과 100여개의 언어를 가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해서 70년 동안 공산체제를 유지해 왔다.


한국과의 교류도 없지 않았다. 러시아는 1860년 블라디보스톡에 진출한 이후 150년 동안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우리의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조선인들의 연해주 이동, 러일전쟁,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제 2차 세계대전, 소련 공산주의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등 가깝고도 먼 나라가 러시아다.


1990년 6월 12일 옐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으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물론 자본주의로의 이행 초기 과정에서 혼란과 무질서에 불만을 품은 군부와 기득권 세력이 쿠데타를 기도했지만 옐친은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켜냈다.

 

1999년 12월 31일 푸틴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 하에서 경제 외교, 국방, 치안이 회복되고 국민과의 Tv질의·응답 시간을 생방송으로 매년 진행하여 국민의견을 청취하는 노력을 함으로써 65% 이상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내정을 수행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차르(황제)’로 불리며 시리아 등 중동 분쟁, 동유럽지역의 영향력 확대, 북핵문제,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현재 러시아 외교는 한반도의 폭풍의 눈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진면목을 더욱 조명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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