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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인가(20)
기사입력: 2017/02/24 [16:4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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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본지 논설위원     ©UWNEWS

 일본과는 현해탄을 마주하고 있다. 싫든 좋든 같이 살아가는 하는 지정학적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동시에 오랜 역사적 교류를 해온 이웃이다. 그러기에 우리 국민은 일본에게 이중적 감정을 가져왔다. 한일 관계는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인 동시에 갈등과 경쟁의 양면성을 가진다.


최근 일본은 통화 스와프 중단을 선언했다. 소녀상 문제로 양국 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한국의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경제대국 일본이 일격을 가한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한 처사이겠지만, 다시금 일본의 숨은 속셈, 야비함을 확인할 뿐이다.  일본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철저한 민족이다.

 

또한 천하제일 사상으로 무장해서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며, 일을 통해 보람을 추구하는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다.


결국 제조상품의 높은 품질관리에 성공해서 1860년 명치 년을 기점으로 아시아의 패권국가로 부상했다. 일본은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빈약한 역사적 전통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 왜곡을 시도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조선사 편찬회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한국 역사의 뿌리를 제거했다. 한민족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식민지로 살아온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반도사관을 정립했다.


조선사 37권에 이런 내용을 담아 일본 동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일본은 이 역사서를 지금도 역사교육에 사용하고 있다. 기원전 1세기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하고 한사군을 설치하여 중국에 복속되었다는 동북공정의 역사가 사실이며, 이는 철저한 실증역사라는 것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고 강변한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일본의 식민지 실증사학을 청산할 때에, 건강한 민족의 행복역사가 열릴 것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만년의 역사를 가졌다. 심지어 세계 최고 문명인 수메르 문명보다 앞선 문명으로 거론될 정도다. 환국, 배달국, 고조선, 북부여, 고구려로 그 역사적 실체를 유지해왔다.

 

동북아 역사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환단고기’라는 역사서는 왜 방치하는 것일까?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만드는데 우리는 왜 있는 역사도 찾지 못하는 것인가? 중국 왕조는 동이족의 역사라는 단서가 산재해있다. 공자도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할 만큼 앞선 문명국이 한반도의 역사이다. 단군조선을 제외하고서는 아시아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 러시아 학자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일까?


고대 한민족의 시원과 흥망성쇠를 기록한 ‘환단고기’는 안감도, 원동중, 행촌이암, 범장, 이맥 다섯 역사가들이 천 년을 이어서 기록한 역사서이다. 배달국은 1565년간 통치하면서 18명의 ‘환웅’이 통치하였다. 그 중 치우천왕은 사마천의 사기에도 분명히 등장하고 있다. 고조선은 47명의 ‘단군’이 2098년 통치한 국가였다. 특히 고조선은 지금의 북경에서 만주, 한반도 전역을 통치하였다. 비파형동검이라는 그 시대 유물을 통해 고조선의 실체는 확인되고 있다.


특히 ‘환단고기 삼성기 상하’에 나타나는 가림토 38자(원시한글)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는 자료였음을 알려주는 완벽한 역사서이다. 이미 오천년 전에 천문대를 만들었던 한민족이다. 동서무역을 통제한 선우 왕이 있었다. 동북아시아 대국 고조선의 역사를 식민사학으로 전락시킨 일본의 역사 침공에 대해 홍범도 장군은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실 것이다. 지금이라도 역사 광복을 위해 환단고기를 되찾아야 한다고 외칠 것이다. 환단고기는 1911년 홍범도 장군 등이 자금을 지원하여 편찬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본 적이 없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만행의 대가로 미군에게 항복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고자 경제대국에서 이제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군사대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물론 2차 대전의 만행을 후세들에게 재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자국이 피해자인 것처럼 위장왜곡하고 있다. 자신들을 심정적 평화주의자로 규정하며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우리 이웃이 참된 평화주의자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은 일본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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