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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지나온 역사는 자기진단의 거울(1)
기사입력: 2005/06/01 [14:1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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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인간의 현재는 과거의 연속으로 때론 반복되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과거,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 그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 자신을 있게 한 기반으로서 환경과 주변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이며, 오랫동안 형성된 자기 것을 맹목적으로 부정하는 모습은 자기를 해체, 소멸시켜 주체성을 상실케도 한다. 그러기에 과거 사건의 분석으로  오늘을 비추어 봄으로 자기 부정이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금은 조선말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반목, 친중, 친일, 친러등 저마다의 이익에 따른 파벌싸움은 국가의 미래보다는 정권 쟁탈에 빠져 세계속의 국가로 자리잡을 기회를 놓치고 국권상실이라는 치욕을 당했던 아픈 역사와 비슷한 국제·국내 정치적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오늘의 한반도 주변국가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높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내정치적 반작용적 모습에 빠져있고 분단의 현실과 함께 핵문제로 첨예한 각축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식민지 시대와 신 식민지 시대를 거쳐 21세기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 친 외세 종속이나 반외세 자주의 냉전적 사고를 넘어서 외세 활용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함에도 서로 발목잡기에 여념이 없는 오늘의 모습은 조선말과 비슷한 현상이다. 
1880년 여름에 김홍집을 대표로하는 제2차 수신사가 일본을 방문했을때 당시 청의 일본주재 외교관이었던  하여장과 황준헌을 만나 동아시아 질서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 속에서 조선이 어떻게 해야 변화 속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얘기하다가  이 홍장의 의견을 포함한 청나라가  보는 조선의 생존전략을 충고 했던 「조선책략」이라는 글을 받아온다.
그 내용은 중국이 조선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주변세력 견제용인 외교정책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순진하여 조선책략의 글을 현실정치에 응용하자 1881년(고종18년) ‘만인소사건’이 터진다. 영남의 유생1만명이 정부의 개화정책에 반대하여 상소를 내고 정치적 반대의 움직임으로 확대되어 개화와 보수 두 세력의 대립과 갈등을 빚어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조선책략의 핵심내용은 親 중국 結 일본 聯 미국으로 조선이 국권 수호를 위해 세력균형에 따라 견제와 자강이라는 정책을 펴라는 내용으로서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 통상조약으로 시작하여 6월 6일 조영 수호통상 6월 28일 조독수호 통상조약이 8월 30일 제물포조약 10월 4일 조청수륙무역 장정등 숨가쁘게 개화의 문을 연다. 여기에 임오군란이 일어나므로 재집권한 대원군이 문제 해결을 위한 5군 영복원 삼군부복원등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므로 청나라는 균세의 위험을 느끼고 군대를 파견하여 대원군을 압송하여 그 정권을 무너뜨리고 개혁파에게 힘을 실어줌과 동시에 조중 상민수륙 무역 장정을 통해 조선이 청의 속국임을 명기한다. 다시 정권을 잡은 개혁파는 실학 사상의 긍정적 요소와 자본주의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함으로 해서 조선사회는 부르조아적 개혁사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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