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인터뷰
만나고싶은남성
최병권 울산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사람이 바뀌고 사고가 바뀌어야 조직에 발전이 있다. 변화의 선두에 서겠다.”
기사입력: 2015/02/05 [12:15]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보은 기자

“낭비요인을 없애고 시민들의 세금이 아깝지 않도록 한다”는 경영철학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 울산유치에 공헌하기도
지자체장 낙선의 고통으로 ‘실어증’까지...“욕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깨달아”
그의 원동력은 ‘열정’ 그리고 복지부동하지 않는 자세

 
▲ 최병권 울산시설관리공단 이사장     ©UWNEWS
지난 2014년 10월 1일, 공개모집을 통해 울산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에 임명된 최병권 이사장이 첫 출근을 했다.

1978년 경남 의령에서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2009년 12월 4일 지방관리관 1급으로 퇴직할 때까지 31년 간 공직생활을 해온 행정 베테랑인 그는 3년 임기동안 특유의 추진력과 개혁성을 바탕으로 시설관리공단에 조용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정규직 임직원 362명, 4개 단 12개 팀으로 구성된 시설관리공단은 울산대공원, 문수축구경기장, 문수야구장, 종합운동장, 근로자 종합복지관, 가족문화센터, 울산하늘공원 등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시민 중심의 서비스 구현, 안전한 시설 관리, 변화와 혁신의 창조경제’가 경영방침인 시설관리공단에 대해 최병권 이사장은 “흑자가 나는 사업은 민간에 돌려주고 적자를 감수하는 사업을 하는 기관”이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시설의 90%가 가족, 청소년 등 일반 시민들을 위한 시설로 현재 수익률 50%를 목표로 자체 수입을 발굴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발령 이틀 째인 10월 2일부터 그는 개혁, 경영 혁신에 중점을 두고 가장 먼저 인사개혁부터 단행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울산하늘공원으로 당초 40명의 인원이 근무하던 하늘공원에 자체 진단 후 인력 21%를 감축하는가 하면 운영하던 직원버스도 매각하고 임대로 전환했다. 감축된 인력들은 다른 필요한 시설로 이동시키는 등의 면밀한 검토를 통해 낭비요인을 없애고 시민들의 세금이 아깝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 핵심이다.

그는 “울산시민은 축복을 받고 있다. 평생 공직생활을 해왔지만 새삼 다시 배우고 있다.”며 김기현 울산시장과의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시 경제통상실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2선 국회의원이었던 김기현 시장의 도움으로 울산에 동북아 허브 사업을 유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김 시장이 없었다면 현재 울산의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은 없었다.”고 산증인으로서 단언했다. 정부가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을 울산이 아닌 여수 지역에 시범사업을 하며 준비 중인 사실을 알았던 그는 여수에 조수간만의 차로 배가 접안을 못한다는 등의 문제점을 발견, 울산 유치를 위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정부의 국책 사업으로 추진 중이던 이 사업을 혼자 힘으로 유치하기는 어려움이 컸다.

서울과 울산을 30여 회 오가며 관계자들을 만나 울산의 당위성과 유리한 입지조건을 설명했고 울산출신 국회의원들을 만나 도움을 구했던 그는 지식경제위원회 간사위원으로 있던 김 시장과 뜻이 통해 힘을 모으게 됐다. 마침내 유치에 성공하고 이에 맞춰 상하수도, 도로 등의 기반시설 마련을 위해 용역비로 국비 10억원을 확보하기까지 그는 김기현 시장(당시 국회의원)을 도와 공직생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는 이때 정갑윤 국회부의장(당시 예결위원장)의 도움도 컸다고 덧붙였다.

2009년 12월 4일자로 퇴직한 그는 또 다른 일에 눈을 돌렸다. 바로 2010년 6월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울주군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것. 그러나 당선보다는 울주군이라는 매력적인 지역에서 보람된 일을 하고자 했던 그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그때를 “일생의 모든 것을 잃었던 때”라 기억했다. 그는 낙선으로 모든 것을 일시에 잃었고 그 충격으로 ‘실어증’이라는 병까지 얻었다고 밝혔다.

느리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처음에는 아예 말을 못하는 상태라 회복하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담당 의사는 불가사의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회복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는 “‘환자 치료에 의사와 약은 보조일 뿐이다’는 말을 직접 증명해보였다. 본인의 의지, 가족의 정성이 있다면 능히 이겨나갈 수 있다.”고 말하여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는 낙선부터 시설관리공단 이사장 발령까지 5년 여의 공백기 동안 인생의 맨 밑바닥을 경험했고 그 경험이 결코 헛된 세월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길 ‘살아나려고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시련은 운명이나 다른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욕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이제는 하루하루 감사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또 모든 것이 귀하고 특히, 옆에서 꿋꿋이 곁을 지켜둔 아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를 알았다는 그에게 아내가 차려준 집 밥이 현재 가장 큰 행복이라고.

경주가 고향인 그는 경남의 여러 시군을 거쳐 1994년 울산에 왔고 기업지원과장, 문화체육국장, 경제통상실장을 역임했다. 광역시 출범 당시에는 광역시 준비단 총괄과장을, 전국체전 때는 문화체육국장, ‘태화강의 기적’ 이라 불릴만큼 오염됐던 태화강에 수영대회를 유치하며 다시 태어나기까지 실무를 맡아 신생 울산시 탄생에 산파의 역할을 했다. 그런 그의 원동력이 된 것은 ‘열정’ 그리고 복지부동(伏地不動)하지 않고 직접 앞서서 나아가는 추진력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현직 때와 비교해 이제 시동만 걸었을 뿐,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다.”며 “사람이 바뀌고 사고가 바뀌어야 조직의 발전이 있다. 변화의 선두에 서겠다.”고 남은 임기동안 시민을 위해 마부작침(磨斧作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 도배방지 이미지

최병권, 시설관리공단, 울산 관련기사목록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