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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청부 입법’을 중단하라
기사입력: 2009/06/07 [15:4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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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삼 주 <시인·민중문화정책연구원장>
▲ 박삼주    
 지난 4월 임시국회는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괴물 법안을 하나 탄생시켰다.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쌍둥이 법안 (금융지주회사법·은행법)중 은행법 개정안만 절름발이로 통과가 된 것으로 그 결과 산업자본은 외한, SC제일, 한국씨티은행은 9%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됐지만, 금융지주회사 산하의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대형은행들은 현행대로 4%만 보유할 수 있게 됐다. 필자가 아는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금산분리가 완화된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라며 혀를 찼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절름발이 법안이 탄생한 발단은 이른바 ‘청부 입법’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후 국회의원 등 뒤에 숨어서 법안을 발의하는 ‘청부 입법’ 관행이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정부에 이름만 빌려주고 마치 자신들이 만든 법안인 것처럼 대리 발의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속전속결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고, 국회의원들은 실적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에게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 당초 논란이 뜨겁던 금산분리 완화 법안을 만든 것은 작년 10월, 하지만 여론의 예봉을 피해 서둘러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한나라당 박종희. 공성진 두 의원과 울산의 3선 국회의원등을 앞세워 청부 입법으로 전환했고, 결국엔 상임위 날치기 통과, 법안 끼워 넣기 등 갖은 고질적 병폐들이 맞물린 끝에 괴물 법안 탄생으로 이어졌다. 정말 한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편법을 쓰려다가 이런 화를 자초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굳이 국회의원 힘을 빌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부입법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까지 관계기관 협의, 당정 협의, 입법 예고,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심의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 이렇게 노출기간이 길면 당연히 법안의 문제점이 사회적 쟁점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의원입법은 의원 10명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정부로선 돌아가는 길(정부입법)보다 쉬운 길(의원 입법)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노무현 정권 당시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이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 종합부동산세법 등 굵직굵직한 법안 상당수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이름을 빌려 통과 됐을 때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길길이 날뛰며 반대하더니, 이명박 정권 하에서 미디어법이나 비정규직법 등 첨예한 법안들이 청부 입법 논란을 빚었다. 특히나 요즘은 “위기 상황이니까”라는 좋은 핑계까지 있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자기가하면 로멘스 인가. 폐해가 커지자 한나라당인지 망한나라당인지 해깔리는 여당 내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올 초 “정부가 여당의원들 뒤에 숨어서 법안을 발의해 달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청부 입법”이라고 꼬집었고 정태근 의원은 최근 청부 입법을 방지하는 법안을 제출하기까지 했다.
 
정부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자기가 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의원들이 부지기수다’고 꼬집었다. 국민들의 찬반이 엇갈리는 등 문제성 있는 법안을 입법할 때 여당 국회의원을 내세워 책임 논쟁에서 벗어나려 비겁하게 꼼수 부리지 말고 정부가 만든 법은 정부의 이름으로 책임지고 입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아울러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유권자와 제도정치의 틀을 좁히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한다. 국회의원들이 임기 내내 유권자를 두려워하게 되면, 청와대나 여당지도부의 일방적인 지침에 의한 청부 입법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고양이는 자신의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한다. 끊임없는 날치기 시도에 분노한다면, 의사당 폭력과 속임수에 진저리가 쳐진다면, 진보·보수를 가리지 말고 국민들이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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