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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선생과 박연차 게이트(?)
기사입력: 2009/04/26 [14:4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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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호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     추창호
전직 대통령이 “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돈을 빌렸고, 자신은 최근에야 알았으며, 청와대 관저에서 받아 빚 갚는 데 썼다”고 해명한 바 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3억원(2006년 8월)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차명계좌에서 고스란히 발견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는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진위를 떠나서 나라의 최고 어른으로써 맡은 소임을 다 하고 이제는 만인의 존경 속에서 편안하게 생활을 해도 좋을 처지에 그런 일에 휘말리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것이 청백리이다. 청백리는 조선 때 의정부·육조·경조의 2품 이상의 당상관과 사헌부·사간원의 수직들이 추천하여 뽑은 청렴한 벼슬아치로 후세에 귀감(龜鑑)으로 삼게 했던 관기숙정(官紀肅正)의 제도이다.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로 오리 이원익선생이 있다.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로서  나라에 공이 많아 궤장机杖을 하사받고, 완평부원군의 칭호를 받았으며, 죽은 후에는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정직하고 검소했으며, 바른 몸가짐으로 ‘오리정승’이라는 친근한 명칭으로 당대 백성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인조는 세자를 보내 조문하게 하고 승지를 보내 제사를 올리게 하였는데, “그 집에 가보니 두어 칸의 띠집이었고, 그나마 비바람을 가릴 수도 없는 낡은 집이었습니다” 라는 승지의 보고를 받고, “그래. 40년 동안 재상을 하면서 초가삼간도 장만하지 못했단 말이냐?”며, 인조는 장례식에 필요한 물품 일체를 하사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원익선생의 일생을 돌아보는 것은 황금만능 사상과 출세지향적인 세태로 인해 존경 받는 어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이원익선생처럼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 존경 받는 어른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존경 받는 어른이 있는 사회에서는 박연차게이트(?)와 같은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충고할 수 있는 언로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고이지신이라 했던가. 이원익선생의 남긴 많은 행적 중 연풍현감으로 부임하는 손자 수약守約에게 자신이 지방관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서여손수약부연풍현書與孫守約赴延豊縣이라는 당부의 글을 써 주었는데, 귀감이 되는 그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끝맺을까 한다. 

 첫째,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몸을 닦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둘째, 일에 임했을 때 지나친 분노를 경계하고, 서서히 일의 실정을 파악하라.
 셋째, 사람을 다스림에 상벌이 없을 수가 없으니, 착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자는 벌을 주어야 한다.
 넷째, 하나의 이익을 일으키는 것이 하나의 폐단을 제거하는 것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다.
 다섯째, 읍중에 일이 있거든 노련한 관리와 연로한 인민에게 물어서 인정에 합하기를 힘써야 하고, 거만을 부리고 자신이 옳다고 하여 민심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백성은 마땅히 어루만지고 은혜를 베풀어야하고, 관속을 대우하는 것도 너무 각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모든 일은 마땅히 때에 따라 마음을 다해야 한다. 어찌 일일이 지휘할 수가 있겠느냐? 등인데, 오늘 날의 사회지도층에 있는 분들이 한 번쯤은 꼭 읽어보고 유념하였더라면 이번과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쪼록 존경 받는 어른이 있는 사회로 봄날 같은 좋은 소식만 가득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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