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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술에 대한 단상
기사입력: 2008/12/12 [10:5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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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호 시조시인/울산문협이사
    
독일의 작곡가 브람스는 세상을 하직하는 자리에서조차 마지막 술 한 잔을 청한 뒤 "아, 좋다. 이렇게 고마운 세상을 떠나다니"라는 말을 남기고 취한 듯 눈을 감았다고 한다. 과연 주선다운 마지막 모습이다. 
  이런 술에 대한 이야기가 최초로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된 것은 『고 삼국사기』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동명성왕)의 건국담 중에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능신 연못가에서 하백의 세 자매를 취하려 할 때 미리 술을 마련해 놓고 먹여서 취하게 한 다음 수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세 처녀 중에서 큰 딸 유화(柳花)와 인연을 맺어 주몽을 낳았다는 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설화에서 우리나라 술의 내력이 꽤 오래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오랜 내력을 가진 술의 역사지만 그 폐해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라 벌휴왕 3년에는 시장거리에서 술주정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고구려 안원왕 2년에는 흉년이면 사원에서 양조하는 것까지도 금지하였다. 고려에서는 지방고을에 명령하여 배불리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조선 태종 원년에는 왕 스스로 금주하여 백성들의 비밀 음주를 금지시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술의 폐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옛 조상들의 음주문화는 엄격하였다. 이런 음주문화를 엿 볼 수 있는 전통 중 하나가 바로  향음주례'다. 향음주례란 성균관이나 전국의 향교에서 행하던 일종의 주도(酒道)예절 행사로 빈주백배 공경지심, 손과 잔을 깨끗이 해 상대에게 권하는 청결지심, 공동체 의식의 일미동심, 적절한 양으로 끝낼 줄 아는 절제의 사양지심을 가르쳤다. 특히 향음주례에서 강조하는 주도에서는 술자리 내내 의복과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신경을 써야 했다. 음식과 그릇 역시 정갈하고 깨끗해야 하며,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침묵을 지키는 절도도 필요했다. 또 대화도중 존경이나 감사사과 등의 표시를 할 때마다 절이나 행동으로 즉시 표현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일불(一不), 삼소(三少), 오의(五宜), 칠과(七過)라 하여  한잔 술로 끝나는 법이 없고, 석 잔 가지고는 부족하며, 다섯 잔이라야 알맞되, 일곱 잔이면 과음이라 하여 자제했다. 이런 여러 사실에서 우리 조상들은  술 마시는 예절'을 매우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요즘 주당의 입에서 우스개로 많이 오르내리는 청탁 불문, 안주 불문, 거리 불문, 친구 불문, 실수 불문이라는 주법 5도에서 보듯 오늘날의 음주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술이 사람을 마시는 건지, 사람이 술을 마시는 건지 모를 정도로 술로 인한 작태가 장난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적당량의 술은 기분을 전환시키고, 사교생활에 도움을 주며, 괴로움을 잊게 하거나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는 등의 장점도 있으나,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든다거나 기억력 감퇴, 돈과 시간 낭비 등의 폐해도 있음을 볼 때 술을 마시는 음주문화의 개선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한다. 온고이지신이랄까. 현대인들이 옛 조상들이 행한 바를 전부 따를 수야 없겠지만 주도의 참뜻을 알고 이를 지켜나간다면 건전한 음주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본다.
  한 해가 술렁술렁 빠져가는 12월이다. 송년회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많은 술자리가 예약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한 잔의 술잔 속에 예절을 바탕으로 한 믿음과 정이 오고 가는 그런 술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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