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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진미 코다리
 
UWNEWS 기사입력  2022/01/06 [12:00]

 

 

김준호는 18세에 춘당 김수악 명인을 은사로 소리와 악을 배웠으며, 상징민속학을 전공했다. 해병대 484기이며, 2014년 1월 1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4호 국내 지신밟기 예능 보유자로 선정되어 인간문화재가 됐다. 

손심심은 17세에 문장원, 양극수, 김동원 명무를 은사로 동래양반춤, 동래할미춤, 동래학춤을 시작하였고, 전통무용을 전공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동래야류 전수조교이고 동래학춤 이수자이다. <편집자주>

 

 

 밥을 싸 먹는 맛있는 김은 조선 시대 광양의 김(金)씨 성을 가진 사람이 최초로 김 양식에 성공해서 붙은 이름이다.

 

 명태도 함경도 명천(明川)의 태(太)씨 성을 가진 사람이 최초로 잡은 고기라고 '명태'라는 이름이 붙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한 겨울철 밥상을 책임지는 명태의 인기는 대단했다. 구워도 맛있고, 졸여 먹어도 맛있고, 무를 숭숭 썰어 넣어 탕을 끓여도 맛있었다. 동해안의 어획량도 상당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것이 없는 알뜰한 식재료였다.

 

 무엇보다도 비린내가 안 나는 신선함과 담백함, 특히 건조만 잘 시키면, 생선이 귀한 산촌에서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보편성으로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명태의 이름은 그 상태나 크기에 따라 매우 다양했다.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 얼린 명태를 ‘동태’, 명태 새끼를 ‘노가리’, 중간 크기의 명태를 ‘중태’, 큰 명태를 ‘왕태’, 덕장에서 노랗게 말린 명태는 ‘황태’라고 불렀다. 소금을 약간 뿌려 말린 명태는 ‘짝태’, 북쪽 지역에서 건조했다고 ‘북어’, 코를 꿰어 반 건조한 것을 ‘코다리’라고 불렀고, 수입한 명태라고 ‘수입태’ 등 생선 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름만큼 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했다.

 

 생태는 탕으로, 황태는 포와 구이와 국으로, 동태는 찌개와 탕으로, 노가리는 안주로, 북어는 포와 국으로, 코다리는 찜으로 먹었다. 그리고 알과 내장은 젓갈을 담아 명란젓, 창난젓으로 담가 먹고, 알탕 내장탕으로 끓여도 맛있다. 하다못해 건명태 대가리는 맛집의 시원한 국물을 내는 비법으로 전수되고 있었다.

 

“댕겨보세 댕겨보세 에야

올라가는 비우치야 에야

우리 소망 들어주오 에야

우리의 망자 열어주자 에야

그물 천 코라도 에야

우리 망자가 잘도 걸었다 에야

아홉 코에 열 마리씩 에야

내리가는 비우치도 에야

우리에 망자에 다와서 에야

걸어주게 에야”

 

-강원 고성 명태 잡는 소리

 

 한겨울의 동태는 가족들의 단조로운 밥상을 책임지는 겨울 진객이었다. 집마다 동태를 '한 때' 스무 마리를 사서 내장을 꺼내고, 한 뼘 되는 대꼬챙이로 가슴을 벌리고 두 마리씩 코를 꿰어, 고양이를 피해 십수 마리씩 빨랫줄에 코다리를 걸었다.

 

 낮에는 짧은 겨울 해를 보고 야간의 북극 추위에 얼었다 풀리기를 사흘 정도 반복하다 보면, 반건조 상태의 삐등삐등한 상태가 되는데 이때가 맛이 가장 좋은 상태가 되었다. 겨울밤은 유난히 북두칠성 바가지가 도단집 지붕 위로 길게 뻗쳐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빨랫줄에 걸린 바짝 언 코다리 두 마리를 풀어 얼른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이 반건조 코다리를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들겼다. 어머니는 중발에 고추장을 푸고, 마늘과 잔 파를 썰어 넣고 막걸리 식초를 붓고, 설탕을 한 숟갈 넣어 홰 저으니 방안에는 코다리 냄새와 초장 냄새로 한 가득이었다.

 

 반건조 코다리는 어중간하게 말라도 비린내가 안 나서, 언 살을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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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1/06 [12:00]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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