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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의 ‘클래식 음악’ 산책
자수성가한 음악가 “하이든”
하이든 교향곡 제 101번 D장조 “시계”, Sinfonia No. 101, 'The clock'
기사입력: 2018/11/06 [11:35]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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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초를 다투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이러한 문구가 이젠 새삼스럽지 않은 걸 보면 바쁘게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바쁘게 살았던 게 오늘날만의 이야기일까? 역사속의 음악가들의 삶을 돌아보면 그들의 삶도 우리네 못지않게 힘들고 모질었던 것 같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다양한 편의와 혜택을 보는 우리네 삶보다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해야 했던 옛날이 오히려 더 힘들지 않았을까 한다. 

 

 하이든은 가난한 하층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2명의 형제 중 다섯은 어릴 적에 죽고 그는 그 위에 누나를 하나 둔 둘째였다. 아버지는 수레를 만드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영주의 성에서 일하던 요리사 였는데, 음악적 재능을 물려줄 부모가 없었지만 그는 음악에 재능을 보인다. 그는 6살이 되던 해에 큰 도시에 사는 고모부에게 맡겨진다. 고모부는 교사이자 교회 성가대의 대장도 맡고 있었는데, 그의 밑에서 하이든은 음악을 배우고 집안의 허드렛일도 하는 도제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노래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오늘날의 유명한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인 빈의 슈테판 대성당 소년합창단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10년간 노래하다가 변성기가 찾아오자 합창단을 그만두고 고모부의 집에서도 나와야만 했다. 이 시대의 음악가들은 귀족가문에 고용되어 급여를 받고 각종 음악회와 작곡을 전담하곤 하였는데, 하이든도 그를 후원해줄 귀족가문을 찾기 시작했다. 모르친 백작집안에 고용이 될 때까지 모든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그는 연주와 가르치는 생활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고모부의 집에서 음악을 배울 수 있었지만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며 더부살이를 하였던 어린 시절과, 오늘날의 직장개념인 귀족가문의 음악가로 고용되기 전까지의 힘든 생활, 그리고 실제로 작곡으로 이끌어주는 제대로 된 스승 없이 독학으로 이전 음악가들의 악보를 필사하며 작곡을 배웠던 그는 진정한 고학생이었다. 

 

 그러던 그의 삶에 하나의 전환기가 찾아오는데,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가문에 취직이 된 것이었다. 음악을 사랑하던 공작의 전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었던 하이든은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다작의 시기가 이때쯤에 찾아온다. 

 

 그러다 그에게 또 한 번의 극적인 전환기가 찾아오는데, 그동안 그를 후원해 주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공작이 사망한 이후였다. 더 이상 귀족에 소속된 음악가가 아니었던 하이든은 때마침 발전하였던 출판업의 덕택에 외국에서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흥행업자 잘로몬의 설득으로 자유로운 음악가의 몸으로 런던으로 출항하였던 그는 엄청난 환대를 받게 된다. ‘이 시대의 위대한 음악가’ 라는 환대 속에서 하이든은 더 많은 걸작들을 완성하게 되는데, 12개의 수준 높은 런던 교향곡 (93번-104번, 놀람, 군대, 시계, 북, 런던 교향곡 포함)과 헨델의 “메시아”에 큰 감명을 받아 빈에 돌아와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작곡하게 되었다. 런던으로의 진출이 그의 음악인생에 엄청난 자극과 전환을 맞게 해준 것이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노력으로 명성을 얻었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다 한 생을 마감하였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그의 인생 역전기를 보다보면 그가 얼마나 강인하고 또 선택받은 사람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 손에서 자라지 못하고 친척의 손에 맡겨졌으며, 그 집에서 생활하며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고 또 학교라는 곳은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작곡을 하고 싶었으나 스승이 없어 독학을 하였고, 근면성과 실력 하나로 버텨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초가 째깍째깍 돌아가는 것 같은 그의 교향곡 101번 D장조 “시계” 2악장 (1794년)을 들어본다. 그 시대의 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작곡하였을 이 곡은 그가 재치와 익살을 갖춘 작곡가였음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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