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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단상
못 다 핀 꽃들이여,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되어라!
기사입력: 2018/08/09 [13:0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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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편집국장
▲ 원덕순 본지 발행인     ©UWNEWS

 ‘일본군 위안부’라 불리는 전쟁피해여성들. 1910년 한일합방이란 이름아래 일본의 강제침탈이 시작되자, 남자는 대동아공영이란 미명하에 일본으로 중국으로 전쟁터로 끌려갔고 여자와 아이들도 노역과 성노예로 이름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이들이 내 할머니였고 이들이 대한민국의 딸들이었지요.


“돈 벌게 해주겠다,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어린 딸들을 끌고 간 전쟁광분자들. 그들이 아직도 역사를 기망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무서운 죄를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제가 아니면 자원이었을까요?
내부모 형제자매 정든 고향을 두고 몸 팔아 돈 벌러 갔을까요? 어불성설도 유만부득. 다른 어떤 말도 필요치 않습니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증언으로 시작된 위안부할머니들은 세상 밖으로 나와 정부에 공식등록했고 그 수는 239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평생 원하던 일본의 반성은커녕 사과도 듣지 못한 채 한 맺힌 삶을 마감한 분은 210여명, 얼마 전 101세의 김복득 할머니의 별세로 27분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들 또한 90세가 넘은 연로한 분들이라 이 분들마저 돌아가시면 일본의 만행을 증언할 실존 피해자가 없게 된다는 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살아있음에도 “강제성이 없었다”는 거짓으로 과오를 은폐하려는 아베의 망발이나 독도는 자신들의 땅이라며 온갖 망발과 만행을 일삼는 일본정부, 그나마 이들을 지켜보며 역사를 지키고 앉아있는 ‘소녀상’은 아픈 역사의 증인입니다.


울산여성들도 작년부터 이 소녀상 앞에서 헌정문화공연을 펼치고 있음은, 늦었지만 할머니들의 한을 위로해드리는 것 같아 만 분의 일이나마 빚을 갚는 것 같습니다. 올 해부터  ‘위안부 기림일’이 기념일로 지정돼 어린 한을 위로하고, 할머니들의 주권과 인권과 명예를 기리고 기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90세가 된 그 시절 어린 딸들을 국가가, 전 국민이 나서서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반성”을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년 전에 울산 대공원에 세워진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헌정공연과 위안부문제에 대한 대시민 홍보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일본과의 외교마찰 문제를 들며 공연을 못하게 만류하는 공무원을 보며 참으로 가슴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2017년 8월14일, 광복72주년을 맞아 위안부헌정 공연을 뜻있는 시민들의 힘을 모아 치루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연약한 아이들과 여성들이 제일 먼저 고통의 나락으로 빠지게 됨을, 소녀상앞에서 부디 잊지말아 달라는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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