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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분노에서 감사를 꿈꾸는 새해 희망
기사입력: 2018/01/04 [12:2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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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본지 논설위원     ©UWNEWS

2017년 국민은 분노로 한 해를 시작했다. 부패로 얼룩진 한 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이게 나라냐!’는 절규 뒤의 절망, 슬픔, 답답함, 부끄러움, 창피 그리고 그간 삭혀온 분노가 봇물처럼 쏟아지게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 되고 재판이 진행되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른 분노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정직하게 노력해도 인맥 없고 돈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긍정되고 있다. 게임의 룰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일부 불만세력이나 빈곤층에 국한되지 않고 젊은 세대, 노년세대, 중장년 세대까지 좌절과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경쟁에서의 패배와 실패를 환경 탓, 남 탓으로 돌려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많은 국민이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룰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한국 자본주의 근본적 재점검을 요구할 만큼 사회적 분노는 거세져 가고 있다.

 
<교수신문>은 ‘사악한 도리를 부수고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2017년 올해의 사자정어로 선정했다. 이 말을 이정표 삼는다면, 2018년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필자는, 감사가 흘러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일 년에 한번 새 마음으로 시작하는 이 때는 다소 비현실적이어도 꿈과 희망을 가져볼만하지 않은가?

 
우리는 옛것이 물러나고 새것이 들어서는 역사적 대전환의 때를 살고 있다. 하지만 옛것이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새것은 다 익지도 않은 채 억지로 옛것을 밀어붙이면 충돌과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역사적 대전환기를 지혜롭게 효과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자칫 기계적 합리성과 찌르는 이성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이 완벽하게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니다. 서로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 허물이 있고 실수가 있는 사람들이 더불어 힘과 지혜를 모아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꾼다. 그래서 감사가 필요하다. 지나간 잘못에 책임을 전가하고 분노하기 보다는 그들의 잘못된 결과조차도 더 나은 공동체로 가기 위한 지불비용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잘못으로부터도 큰 교훈을 깨달아가는 감사의 마음이 분노의 마음보다 크게 하자는 것이다. 개인의 좌절된 꿈이나 아픔에 집착해서 모두를 증오하는 공동체의 파멸은 피해야 한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이 민족은 어떠했는가? 나라를 빼앗겼다. 갑론을박 사분오열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넘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아름다운 이 땅을 후손들에게 줄 수 있다.

 
북한은 핵폭탄을 들고 계속 위협하고 있다. 중국과의 사드 문제도 봉합된 것이 아니다. 한류를 차단하고 한국을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 경제 제재를 어떤 식으로 가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며 전쟁위기론을 생산하고 있다. 구경꾼 일본은 이 전쟁을 부추기며, 러시아는 한걸음 떨어져 관망하며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집을 읽었다. 1964년 워싱턴 대행진에서 행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연설문에서 그는, ‘버스에는 백인 전용 칸이 따로 있습니다. 흑인에게는 선거권이나 시민헌법의 평등권도 없는 것이 미국 흑인의 현실입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그 꿈이 나에게 있습니다’고 희망을 외쳤다. 당시로서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그 꿈이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고, 8년을 품위 있고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미국을 통치했다. 루터 킹 목사의 그 꿈이 변화를 위한 희망이었듯이 이제 우리사회도 GDP 3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답게 분노의 시대를 넘어 서자.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끔찍한 유행어를 깡그리 지워버리자. 서로를 감싸고 행복 해 질 수 있는 감사를 노래하자. ‘불 테면 불어라 겨울바람아 눈보라 섞어 치니 사정도 없다 만은 감사를 모르는 인생보다 모질지 않구나’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서로를 정으로 끌어안고 서로에게 감사하자. 감사는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보내는 감정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평화를 가져준다. 역경 중에서도 내일을 내다보는 희망을 노래하는 ‘감사’를 새해에는 꿈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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