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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순의 세상읽기
전통시장과 정치쇼
기사입력: 2017/01/31 [12:0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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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UWNEWS

명절을 앞두고 예외없이 등장하는 뉴스가 있다. 명절 차례상 차리는 비용에 관한 뉴스이다.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에 비해 크게 저렴하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명절을 앞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양상은 판이하다. 올해도 전통시장은 주머니가 얄팍한 서민과 노인들의 집합장소일 뿐이다.

 

주머니가 두툼한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은 화려하고 따뜻할 뿐더러 상품 고르기도 쉽고 주차도 편리한 대형마트로 여전히 몰린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3년 전통시장 매출액은 20조 7000억원으로 2001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굳이 춥고 썰렁한 전통시장을 찾는 넉넉한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들이다.

 

20대 국회의원의 평균재산은 34억 2천만원이다. 이런 정치인들이 장보기 위해 전통시장에 갈리는 없다. 장바구니 물가를 확인하러 가는 것도 아니다. 대구 서문시장이나 여수 수산시장처럼 화재가 발생한 전통시장에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달려가지만, 상인위로나 화재복구에는 큰 관심이 없다.


정치인들이 시장에 가는 이유는 딱 하나 언론 때문이다. 기자나 카메라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시장에 가서 물가를 확인하고 상인들을 만나 서민경제 해법을 모색했다는 정치인 얘기를 필자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정치인들에게 시장은 실물경제의 현장이 아니라 정치홍보의 현장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연출하고 주연하고, 언론이 제작하는 정치쇼이다. 여기에 전통시장은 무대가 되고 상인은 단역배우가 된다.


정치인들이 시장을 홍보현장으로 애용하는 이유는 전통시장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일상화되고 손 안에든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전통시장은 낯선 사람들에게 자유로이 개방된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출구나 입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누구나 쉽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


상품만 있고 판매자는 없는 대형마트와 달리 전통시장에는 상인들이 구매자를 반갑게 맞아준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생존을 위해서도 반갑고 친절하게 지나는 사람들과 교류해야한다. 정치인들에게 냉랭한 시선을 보내거나 악수조차 회피하는 길 거리의 유권자들과 달리, 전통시장 상인들은 수행원과 기자들을 몰고오는 정치인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전통시장 쇼를 완성시켜주는 것은 언론인데, 그 대부분은 그 지역의 언론이 아닌 타지역 언론이다. 이들은 거두절미하고 정치인들과 상인들과의 화기애애한 장면만을 보여준다. 정치인들을 거부하거나 면박주거나 쓴 소리를 하거나 항의하는 시장상인들의 모습은 알아서 삭제해준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시장에 가기 전에 언론에 먼저 알리고 부른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대구 서문시장 방문처럼 오히려 정치적 역효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한편 정치인들의 전통시장 방문을 있는 그대로 촬영해 보여주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인터넷에는 정치인들이 전통시장을 찾아가 만드는 각종 쇼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들이 넘쳐난다. 조회수가 100만건을 넘은 것도 적지 않다.


문제는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전통시장을 배경으로 서로 공모해서 만드는 쇼 때문에 전통시장의 이미지가 더욱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서민적 풍모를 더해주지만, 전통시장을 정치인들의 놀이터이자 텃밭으로, 시장상인들을 정치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유권자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이 값싸고 친절하고 신뢰할만한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전통시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통제해야한다.

 

시장 상인들 스스로 정치인들의 시장방문 시 대처하는 행동요령 등을 만들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가식적으로 웃으며 악수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등 연출된 정치인의 연기에 상인들이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상가방문 전에, 상인대표들과의 면담을 통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상인들의 요구와 정치인들의 대안제시 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면담결과를 언론에 공표하여 공약으로 이행되는지 추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치인들과 일부 외지 언론이 짜고 치는 고스톱에 전통시장 상인들이 더 이상 공모자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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